대한민국이 한 달을 넘게 연이어 폭로되는 학위위조 사건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의 학위 위조 사건 이후 김옥랑, 윤석화, 장미희, 지광스님 등 유명 인사들의 허위 학력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특히 4-50대의 유명 연예인이나 예술가의 허위학력이 주요한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인터넷이 보편화된 2-30대 연예인의 경우는 학력을 속일 수도 없는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다.

학사학위를 속이고 석,박사학위가 진짜인 김옥랑 교수는 공연계 마당발이다. 그러나 누구처럼 뛰어난 화술을 가져서, 인간관계에 뛰어나서가 결코 아니다. 김옥랑은 젊은 시절 열성적 연극계 팬으로서, 개인적으로 극단들을 후원해오다, 그것으론 부족해, 인형극단 창단, 인형극 잡지 “꼭두극”을 발간하고, 1987년엔 본격적으로 대학로를 대표하는 문화공간 동숭아트센터를 설립하였다. 개인적으로 수많은 예술가들을 돕던 그녀는 자신의 예술가 지원을 체계화하고 지속적 작업으로 남기기 위해, 옥랑문화재단을 설립, 매년 예술가들의 작업과 해외연수등을 지원해오기도 했다. 국내 최초의 예술영화전용관 동숭씨네마테크(현”하이퍼텍 나다”)의 문을 연 것도 그녀다. 김옥랑은 학벌을 지렛대 삼아 출세를 모색할 필요도 명예를 탐할 필요도 없는 사람이다. 자신의 열정이 움직이는 대로, 주어진 재정적 여력을 송두리째 문화예술에 투여하며 살아왔던, 한국사회에서 그 비근한 예를 찾아보기 힘든 인물이다.

나이 오십이 넘어 그녀가 굳이 학위를 따고 교수가 되는 길을 택한 것은 명예나 학벌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엄청난 시행착오를 하며 걸어온 길을 사회적 경험으로 남기고, 그것을 후학들에게 전하고 싶어서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녀의 석,박사 논문 모두가 그래서 자신이 설립하고 직접 경영해온 동숭아트센터 경영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김옥랑씨 정도로 문화예술계의 굵직한 경험들을 한 몸에 체득한 사람이라면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라도 주었어야 하는 것이 도리어 순리라고 본다.

지난 20일에는 방송인 강석씨가 자신의 허위학력에 대한 사과방송을 ‘싱글벙글 쇼’를 통해서 했다. 강씨는 “오랜 방송 경력을 통해 제 인생 행로에서 학력의 높고 낮음은 크게 중요하지는 않았습니다. 성실한 연기와 대사를 소화할 수 있는 인식 능력이 있으면 그것으로 족했습니다.”고 했다.

학력보다 실력을 중시하는 프랑스에서는 직업경력이 학력으로 인정되어, 굳이 석사과정을 마치지 않았어도, 바로 박사과정으로 들어가기도 하는, 학력과 직업경력간의 상호호환이 제도화, 보편화 되어있다. 판단은 거의 전적으로 담당 교수가 한다. 물론 교수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입학한 학생이 학위를 따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다.
학력(學歷)을 속이고 사회활동을 한 사람들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혹시 한국사회가 학력(學力)을 오로지 학교에서 배운 지식만을 일컫고 일을 통해서 획득한 전문적인 역량을 무시하는 편협한 학벌위주 사회는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모름지기 학력(學力)이 근본, 고갱이고 학력(學歷)은 껍데기, 외양일 것이다. 같은 학력위조 경력자라 하더라도 그 학력(學力)이 같지는 않을 것이다. 연이어 터지는 학력위조 사건 속에서 우리 청소년들은 사건 주인공들의 삶과 그 실력을 찬찬히 알아봄으로써 ‘대야의 물을 버리면서 아기를 함께 버리는 잘못’을 범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