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더위에 긴팔 수녀복장을 하고 명동성당 입구까지 나와 아이들을 기다리고 계신 채지연 수녀님은 계성여고의 미술담당 선생님이시다. 이것뿐이랴? 지렁이들의 엄마이자 이젠 환경동아리 ‘아름다운세상’의 환경지킴이로 그 역할을 충실히 담당하고 계신다. 처음부터 이런 것은 아니었다. 몇 년 전 수녀님들이 참석하는 수련회에서 잔디밭에 잡초를 뽑아야 했는데 무엇을 뽑아야 할지 구분이 잘 안되었던 채지연 선생님은 선생님이 맡은 자리만 유독 진도가 나가지 않아 다른 수녀님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선생님은 “그만큼 자연과 친하지 않던 나였는데, 이제는 교장선생님이 저처럼 자연을 사랑하는 학생들을 많이 키우라고 칭찬해 주실 정도”라며 아
 
이들과 함께 많이 배우고 있다고 하셨다. 이번 여름이 끝내 아쉬웠는지 늦여름의 기승은 가실생각을 안하고 부채질하는 사람들의 손길은 더욱 바쁘게 움직인다. 그 더위를 뚫고 계성여고 ‘아름다운세상’ 친구들이 하나둘 나타나자, 선생님은 ‘우리 지렁이들 온다’며 아이들을 반기셨다.

보수공사가 한창인 명동성당을 등지자 아름답고 아늑한 계성여고가 나타났다. 이곳에서 ‘아름다운세상’ 친구들은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힘을 키우고 있었다. 그 1단계로 땅을 기름지고 윤택하게 만드는 지렁이를 키우고 있다. 지렁이라는 소리만 나와도 기겁하여 도망칠 것만 같은 여학생들이 ‘지렁이 엄마’를 자청하고 나설 정도로 지렁이에게 많은 정성과 시간을 쏟고 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는 자유로운 점심시간을 반납하고 잔반을 수거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지만 이들에게 이것은 즐거운 불편에 지나지 않는다. 주현이는 “지렁이가 잘 먹어주면 얼마나 뿌듯한지 모른다”면서 “잔반을 먹은 지렁이들이 배설물을 배출하는데 이것이 바로 최상의 비료인 분변토”라고 설명했다. 지렁이엄마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팔이 짧은 지렁이를 대신해서 상을 받아주는 것도 엄마의 몫, 형주는 “최근 천주교 환경사목위원회가 만든 ‘제1회 하늘 땅 물 벗’상을 받았다”면서 “이 상은 해마다 창조물 가운데 한 개체를 수상자로 정해서 주는 상인데, 바로 우리 지렁이들이 수상자”라고 말했다. 윤지는 “학교에 60년 된 은행나무가 벌레의 습격으로 주변에 갈 수도 없는데다 나무가 시들기까지 해 안타까웠는데, 그 밑에 지렁이를 풀어놓았더니 얼마 후 벌레들도 다 사라지고, 나무가 더욱 튼실해졌다”면서 “지렁이들은 자연을 치료하는 치료사로 상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지렁이와 분변토를 이용해 학교 텃밭과 나무를 키우는 작업이 바로 ‘아름다운세상’의 2단계과정이다. 그래서인지 계성여고는 다른 학교와 다르게 오이와 토마토 등 여러 종류의 작물들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다 지렁이와 ‘아름다운세상’ 친구들이 일구어낸 결실이다. 본격적으로 3단계는 학교 밖으로 나가 도시농을 하는 것이다. 이미 연천에 도시농을 마련해 옥수수 등 여러 작물을 키우고 있지만 갈 시간을 내지 못해 미루고 있다는 이들은 수확해야 하는 옥수수가 마냥 그립다고 한다.

이러한 단계를 거치면서 이제는 물, 벌레, 흙, 풀 등등 자연 앞에선 무조건 뛰어들고 보는 ‘아름다운세상’ 친구들. 작년에 신문반과 합동으로 캠핑을 간적이 있었다고 한다. 계곡과 밭에 들어갈 일이 생겼는데, 신문반 학생들이 어떻게 해야 할 지 망설이며 버티고 있는 사이, 아름다운세상 부원들은 이미 양말을 벗고 바지를 말아 올리며 들어가 놀고 있더라는 것이다. 채지연 선생님은 “선생님들도 그런 모습을 보면서 많이 놀라셨어요. 아마 도심의 많은 청소년들이 자연 앞에서 신문반 아이들과 같은 모습을 보일 것”이라면서 “자연 앞에서 허례허식 없이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단순하게 받아들이고, 부딪쳐보는 것이 이들에게 생긴 가장 아름다운 변화”라고 하셨다. 윤지는 “그것이 훈련되다 보니깐 이제는 실생활 속에서도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알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윤지의 말을 뿌듯하게 듣고 계시던 선생님은 “자연을 대하면 대할수록 아이들 속에 있는 공해가 빠져나가는 것 같다”며 “자연은 인간을 치료하는 치료사와도 같다”고 하셨다.

 
자연을 통해 쑥쑥 자라고 있는 이들에겐 나름대로 환경을 지키는 방법들이 있다. 되도록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형주와 포장재가 많은 제품을 피한다는 주현이 외에도 ‘아름다운세상’의 10명에 이르는 식구들은 유전자 조작? 변형으로 이루어진 식품을 한 가지 이상 먹지 않기로 다짐했다. 먹지 않는 인원이 늘어간다면 잘못된 식품을 더 이상 만들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이는 잘못된 식품을 향한 그들만의 조용한 시위이기도 하다. 형주는 “아무데나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것은 환경보호의 기본”이라면서 “가까운 거리걷기, 개인 컵 사용, 손수건가지고 다니기, 에너지 절약, 땅과 먹을거리에 대한 고민을 청소년들이 해봤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들의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러한 경험과 지식을 겸
 
비하기 위해 얼마 전 부원 모두가 환경기자단에 등록하기도 했다. 취재하는 과정을 통해 자연에 대해 스스로 공부하고 알아가는 기회를 삼기 위해서다. 이 뿐만 아니라 환경과 연결되는 과학, 생물, 화학 등은 담당 선생님과의 자리를 마련해 배우기도 한다. “선생님이 채워줄 수 없는 부분들을 배울 수 있게 연결시켜주는 것 또한 선생님의 몫”이라는 채지연 선생님은 도시농을 갈 때도 그냥 놀러가는 법이 없다고 하셨다. 도시농을 하러 1박2일로 떠날 때면 꼭 그 근처에 사시는 할머니와 신부님을 모시고 저녁식사를 한다는 선생님은 “이를 통해 어른이 먼저 수저를 드셔야 하는 식사 예절에서부터 삶의 지혜까지 배울 수 있는 전인적인 교육에 힘쓰고 있다”면서 “‘아름다운세상’은 지렁이나 작물을 키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모든 것이 조화롭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방식을 터득하고 가르치는 동아리”라고 설명하셨다.

아름다운세상은 내년에 도시농을 접고 텃밭을 가지고 있는 공동체나 학교, 주민들을 상대로 방법을 전수해주는데 주력할 계획이다. 이는 ‘아름다운세상’의 4단계 전략이기도 하다. 이 4단계를 실천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연친화적인 삶을 통해 복잡한 마음이 단순화되어 보다 더 살기 좋은 세상으로 거듭나길 바라고 있다.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훈련되고 준비된 이들이 이제 막 날갯짓을 시작하며 이곳저곳으로 날아들 것이다. 그들이 있는 그곳이 바로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을 기약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