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에서 군 소재지의 읍내 고등학교로 학교를 옮겼을 때였다. 가던 첫해에 새 대통령 선거가 있었는데, 읍내 교사들 대부분이 선거 투.개표요원으로 동원되었다.
개표요원으로 군청 대강당으로 집결했을 때, 나는 이웃 초등학교 교사들 중에서 안면이 있는 여선생님을 발견하고 멈추어 섰다. 그 여선생님도 움찔하고 나를 바라보더니 그만 고개를 돌리는 것이었다. 어디서 봤더라, 잠시 후 나는 그이가 초
 

임으로 근무한 여고의 제자 ‘은주(가명)’임을 기억해 냈다. 너무나 반가워서 달려가 얼싸안고 싶었는데, 은주는 내 시선을 느끼면서도 한사코 외면하려고만 했다.

은주를 만난 것은 첫 발령지인 C시 근교의 한 여학교에서였다. 그 학교에는, 성적이 모자라 가까운 시외 학교를 택해 온 시내 학생들과, 시골에서 온 학생들이 반반씩 섞여 있었다. 명색이 인문계 고등학교였지만 드센 학생들이 많이 모이다 보니 소란한 데다, 학생들의 탈선과 비행 문제 때문에 학교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그런 학교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쉬는 시간에도 조용히 앉아서 책을 들여다보는 학생이 있었다. 바로 은주였다. 은주는 내 반 학생이 아니어서 자세한 사정은 몰랐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그 학교에 왔을 것이란 짐작은 갔다.
겨울방학을 하기 전쯤 그 반 담임이 출산휴가로 잠시 학교를 비워 나는 그 반을 임시로 맡게 되었다. 은주는 표정이 밝지 않고 말수도 적었다. 그 또래 여고생들과는 달리 외모에 신경을 쓰는 것 같지도 않았고 친구들이 떠드는 소리에도 무관심하게 책만 파고 있었다.
은주는 새벽같이 학교에 걸어서 다니기 때문에 얼굴이 늘 벌갰다. 이것저것 사정을 물어봐도 버스가 잘 안 다니기 때문이라고만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한번은 은주가 나를 찾아와 먼저 말을 걸었다. “오늘은 김장을 하는 날이기 때문에 오전수업만 하고 조퇴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장하는 날이라니, 은주는 대답 대신 그저 눈길을 운동장 쪽으로 돌리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옆 병설 중학교 건물에서 나온 고만고만한 중학생들이 겨울 햇볕을 쬐며 은주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얀 집’에 사는 애들이에요.”
은주가 가고 난 뒤 옆의 교사가 내게 대신 대답해 주었다.
내가 버스를 타고 가끔 시내로 나갈 때면, 산 아래 푸른 측백나무로 둘러싸인 하얀 건물이 눈에 띄었다. 건물이 멋지고 이국적이어서 그게 무슨 건물일까 늘 궁금했는데, 그곳이 은주가 사는 고아원이었던 것이다. 원래 이름은 ‘꿈의 집’이었지만 사람들은 그냥 ‘하얀 집’이라고 불렀다. 거기서 학교까지는 버스가 자주 다니는 국도인데, 그렇다면 은주는 버스비를 아끼기 위해서 걸어 다녔을지도 몰랐다.
김장을 하고 온 다음 날 은주의 손은 부르터 있었고 손톱은 온통 벌갰다. 나는 사람들이 빠져나간 교무실에서 은주와 둘이 마주 앉았다.
나는 은주의 처지를 일부러 동정하지 않는 투로 무덤덤하게 물었다. “누구와 어떻게 김장을 했느냐”고 그래서 알아낸 것은, 그 고아원에서 은주가 동생과 같이 산다는 것, 거기에는 아주 어린 아기부터 고등학생까지 사는데 큰 아이들이 어린 동생을 돌보기도 하면서 웬만한 살림은 골고루 떠맡는다는 것 등이었다.
아무도 없는 교무실에서 난로가 타들어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대화를 하는 그 분위기가 은주를 편하게 만든 것인지 서서히 은주의 말문이 트이기 시작했다.
“어린 초등학생들은 아기를 돌보고, 우리는 김장하는 걸 돕고, 오빠는 중.고등학교 남학생들을 데리고 김장독을 묻을 구덩이를 팠어요.”
“오빠라니, 누구 말이니?”
은주는 원래 하얀 집 애들은 고등학교를 마치면 취업을 해서 고아원을 떠나야 하는데 한 오빠가 고아원에서 계속 일을 돌보면서 국립대에 다니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너도 그 오빠처럼 대학을 가고 싶으냐?”
이야기가 계속되자 은주는 조금씩 자기 속마음을 열어 보였다. 고아원을 나간 언니들의 사는 형편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더라며, 자기는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아직은 어린 동생과 고아원에 함께 있기를 원한다면서 고개를 떨구었다.
고아원 원장에게 다시 확실하게 물어보고 와서 이야기를 또 나누자고 돌려보냈더니 다음날 그 소식이 궁금했던지 은주는 먼저 나를 찾아 교무실 문 앞을 기웃거리며 서 있었다.
은주가 고아원에 계속 머물기 위해서는 교육대학을 가야했다. 당시 국립대 등록금은 사립대학교에 비해 3분의 1 밖에 되지 않았고, 교육대학은 또 2년제였기 때문에 은주에게 가장 적합한 진로였다. 그러나 은주가 교대에 가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노력해야 했다. 은주는 고아원에서 일도 돌보아야 하기 때문에, 학교에서 시간을 잘 아껴 써야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은주에게 진학 상담이 된 셈이었다.
방학이 끝나고 은주 반에 수업을 몇번 더 들어갔을 것이다. 은주는 여전히 조용했지만 나에게 보내는 눈빛은 평소와 달라 보여서 내 마음도 흐뭇했다. 그리고 바로 나는 만기가 되어 그 학교를 떠났다.

그런데 은주를 이렇게 먼 곳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은주가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으니 은주는 정말 자기 꿈을 이룬 것이다.
나를 멀리한 것을 보면, 고아원 출신이라는 사실이 은주의 마음 깊숙이 열등감을 심은 것일 수도 있었다. 나는 왜 그때 은주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심어주지 못했을까. 개표를 하는 동안 내내 섭섭함과 안타까움이 겹쳐서 마음이 불편했다.
그러나 일을 마치고 새벽녘 찬 공기를 가르고 돌아올 즈음에는 내 마음이 퍽 상쾌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계속 은주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덧 편안한 마음이 된 것인지도 몰랐다. 교사는 제자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잘 날게 해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때로는 먼발치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는 것이다.
누구나 콤플렉스가 있고, 그것을 지혜롭게 극복하면서 자생력을 기르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내 열등감을 그 나이에 한꺼번에 명쾌하게 해결하진 못했으니까.

그래도 은주가 예전보다 표정이 많이 밝아졌네, 그 모습을 떠올리자 나는 흐뭇해졌다. 자신하건대, 앞으로 생활이 힘든 제자를 만난다면 은주는 누구보다도 그들의 문제를 잘 해결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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