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청소년상담원은 올해 전국의 10개교를 선정, 학교청소년상담사를 교육 현장에 파견키로 해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학교상담이 변화를 맞는 중요한 시기에 우리나라 ‘스쿨 카운슬러의 대모’격인 김여옥 선생님(71.전 무학여고 교장)을 만났다. 김여옥 교장은 사단법인 천원 오천석기념회가 운영을 맡고 있는 서울 서초주니어센터의 원장직과, 서울시카운슬러협회 부설 청소년인성지도교육원이 운영하는 대안교실(1~2주 과정)의 교육을 지원하며 봉사 활동을 펴고있다.
 

*은퇴 뒤에도 여전히 바쁘신 모습을 보니 선생님께는 정년이란 단어의 의미가 없군요.

서초주니어센터에서는 갖가지 사회 교육 프로그램을 열고 있으며, 최근에는 페다고지 프로그램과 노인상담자교육 등을 개설하여 좀 더 활기찬 사회를 만들려고 하고 있다. 또 한국카운슬러협회 이사로 활동하며 서울시카운슬러협회 부설로 만든 ‘청소년인성지도교육원’을통해 중.고등학생들을 위한 대안교실을 열고 있다. 한국걸스카우트연맹 한층을 빌려 운영하는데 “걸스카우트에 간다”고 하면 남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아이들이나 부모들이 모두 이곳을 좋아해 내실있는 대안교육을 할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

*근무한 곳에서마다 학교상담에 남다른 열정을 쏟으셨는데, 국내에 학교상담이 형성되던 초기의 역사와 개인적인 활동 동기를 들려주십시오.

한국 카운슬링의 개척은 학교상담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1950년대 후반에 가이던스, 카운슬링이라는 말이 들어온 이후 요원양성과정을 통해서 많은 교사들이 교육을 받고 생활지도와 상담활동을 벌였으며, 1973년에는 교육법으로 학교에 전임상담교사를 배치하는 제도까지 제정될 정도로 붐을 일으켰다. 그러나 수시로 변하는 교육제도로 상담교사제가 충분히 자리잡지 못해 아쉽다. 내가 상담을 처음 하게 된 동기는 1961년 6월 10일 토요일, 당시 봉직하던 학교에서 가장 공부도 잘하고, 소위 ‘얼짱’이던 여학생이 자살미수에 그친 일이 계기가 되었다. 담임, 교장선생님 등이 병원에 찾아가 자살 원인을 밝히려 해도 학생은 입을 열지 않았고, 전 교사의 명단을 보여주고 하나하나 이름을 짚어 내려가던 중 나를 만나겠다고 하여 내가 갔던 것이다. 그 아이는 집이 가난하여 친척집에 양녀로 들어가서 학교를 다니다가 친척에게 성폭행을 당한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순결=도덕’만 강조되던 시기로 성교육이나 성폭행당한 이들을 도와주는 곳이 전혀 없어서 학생은 감당치 못하고 자살을 택한 것이다. 그 이후 나는 상담공부를 시작해 1963년 제1기 카운슬러 양성교육을 받았다. 햇병아리교사였지만 선택되어 강의를 듣고 책을 보며 상담 공부를 했다.

*60~70년대 상담 활동과 그 후의 변화추이를 비교한다면?

카운슬링의 목표를 문제 해결과 치료에 두었던 초기의 카운슬링에서는 그 대상이 부적응학생일 수밖에 없었고, 상담실에는 문제를 가진 학생들이 드나들었으며, 상담자들은 문제 해결에 부심하였다. 치유적 입장에 비중을 두고 일하던 나는 어느 때부터인가 아이들에게 치료적인 상담보다는 예방 차원의 상담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자율적인 자기의 지도력 신장을 위한 심성계발프로그램을 고안했

 
다. 사춘기라서 아이들은 미래에 자신이 없고 앞이 깜깜할 때 죽고 싶어 한다. 그런 아이들도 자기의 가능성을 발견하면 곧 좌절과 절망에서 벗어나 희망을 되찾는다. 심성수련프로그램을 통해서 아이들은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듯 눈에 띄게 달라져 갔다. 아이들에게 자기의 내면을 찾아가는 방법으로 <사물과의 대화법> 책도 썼다. 73년 여름 한국카운슬러연차대회에서 ‘심성계발’이라는 단어를 처음 써서 결과를 발표 했을 때 많은 학계의 논란이 있었으나 카운슬링을 전공하신 몇몇 교수님들이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셨다. 이후 명칭을 심성수련으로 바꿨다. 학생 대상의 심성계발
 
프로그램을 할 때, 한번은 주먹으로 유명한 학교의 아이들 그룹이 참가해서 학교 내 4층 복도의 유리창을 몽땅 깨뜨려버린 적이 있었다. 내가 눈 하나 깜짝 않고 내 돈으로 유리를 죄다 새로 끼우자 아이들은 변화를 보였다. 또한 2박 3일 동안 마음을 열지 않고 반응도 않던 소아마비 아이가 대화, 경청, 스피치 훈련, 미술치료, 동작훈련 등을 통해 마음이 열려 “나는 지금까지 다리가 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다리만 빼고 모든 것을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부터 나보다 더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서 살겠다”고 마지막 시간에 눈물을 흘리며 발표를 할 때 더욱 상담분야에 보람을 느끼게 되었다.

*학교상담자원봉사자제도 등 중.고교의 학교상담실을 육성해온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서울시 교육연구원의 생활지도상담부장으로 일하던 1985년,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에서 청소년문제 종합대책안을 수립하라고 해서 이 때 학교상담실을 지원하는 의미로 학교상담자원봉사제를 만들었다. 대졸 이상의 여성유휴인력을 활용, 상담기초이론.상담기법.실습 등 총 60시간의 집중교육을 시켜서 20개 학교와 7개 교육구청에 봉사자를 파견했는데, 지원자들이 많이 몰려서 첫해에 2회에 걸쳐 3백명을 배출했다. 자신의 문제 상담을 위해, 또는 자녀를 위해, 그리고 봉사를 위해서 지원해 온 그들을 ‘사랑의 선생님’이라 불러 매달 워크숍과 추수지도를 했으며 이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아쉬운 점은 좀더 학교상담자원봉사자들에게 응집력을 갖게 해주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그래도 그들이 씨앗이 되어 교회나 지역사회 안에서 상담을 확산시켰다고 본다.

*상담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학교상담의 발전을 위해 학계에 바라는 제안이 있다면?

카운슬링을 하며 내가 성장하는 것을 느낀다. 또 나를 찾아오는 내담자만이 클라이언트가 아니고 나도 클라이언트중의 하나이다. 내담자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며 나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고 부족한 것을 보완해 가면서 성장해 가는 것을 느낀다. 그것이 상담의 매력이다. 요즘 대학에서는 상담을 전공한다고 해도 너무 이론면에 치중해 있는데 이를 극복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학교 가까운 곳에서 청소년상담사, 임상심리학자, 사회복지사가 함께 일하는 것이 윈윈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지역사회 내에서 청소년들의 문제를 예방하고 치료하며 진로계발을 해 줄 수 있는 획기적인 프로그램을 벌여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인터뷰-조남진 홍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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