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떠나겠네. 지루해. 일을 하고 싶은데 여기선 할 수가 없어. 자네 집에서는 최소한 혼자 틀어박혀 지낼 수는 있겠지. 여기선 아버지가 ‘얼마든지 서재를 사용해라, 아무도 방해 안 할 테니까’라고 말씀하시면서도 내 곁에서 한 반짝도 안 떨어지시거든. 간신히 아버지를 떨쳐 버려도 마음이 불편해. 어머니도 마찬가지야. 벽 뒤에서 자꾸 한숨 쉬는 소리가 들린다고. 하지만 막상 어머니한테 가면 딱히 할 말도 없는걸. -본문 중에서

사춘기가 지나면서부터 부모님의 관심은 부담스러워지기 일쑤다. 밥은 먹었는지, 공부는 잘 하고 있는지, 친구들과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기만 한 부모님의 마음은 아랑곳 않고, 점점 더 비밀이 많아지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진다.

『아버지와 아들』은 ‘세대’간의 갈등에 주목한 러시아 소설이다. 이 책의 저자 이반 세르게예비치 뚜르게녜프는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와 함께 러시아 3대 문인으로, 격변기 러시아의 사상적 갈등을 세밀한 관찰력으로 그려냈다. 진보와 보수간의 사상적 갈등을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라는 보편적인 갈등으로 풀어내어 공감대를 높였고, 그 외에도 젊은이의 방황과 열정, 사랑 등 다양한 소재들로 무겁지 않게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다.

대학을 졸업한 아르까디와 친구 바자로프는 젊은 세대를 대변하는 인물로, 아르까디의 고향에 내려가면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귀족적인 보수성을 자랑하는 아르까디의 아버지와 아르까디의 큰아버지 빠벨은 새로운 사상을 배우고 돌아온 젊은 세대에게 구식이란 평을 받는다.

이제 우리 형제는 전성기를 다 보내고 구식으로 전락한 모양입니다. 뭐, 바자로프 말이 맞는지도 모르죠. 하지만 솔직히 말해 한 가지는 가슴이 아픕니다. 이제야말로 아르까디와 가까워지고 잘 지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전 뒤로 쳐지고 아르까디는 앞서 가버렸어요. 서로를 이해할 수 없게 된거죠. -본문 중에서

바자로프는 자연과학을 공부하는 의사로 최신의 학문을 공부했고, 모든 것을 부정하는 ‘니힐리스트’였다. 귀족 출신인 아르까디보다도 급진적이고 저돌적인 성격으로, 아르까디의 가족과도 심지어 친구인 아르까디와도 계속해서 갈등을 일으킨다. 전쟁 이후의 젊은 세대는 기존의 가치관을 무너뜨리는 것만이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의 것들이 전적으로 다 나쁠 수가 있겠는가. 바자로프는 똑똑하고 매력적이었지만, 어떤 가치도 믿지 않으려 했기에 외로움을 자처한다.

어렸을 적 나 역시도 ‘부모님과는 통하지 않는다’ ‘부모님은 우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친구한테만 속내를 털어놓고, 친구하고만 생각을 공유했다. 그리고 부모님의 생각들은 ‘옛날 생각’이라며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한 해 한 해 시간이 지나면서 나 역시도 부모가 되었고, 부모님의 생각과 내 생각이 전적으로 일치하지는 않지만, 서로에게 배울 점은 충분히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부모와 자식 간에는 결국 사상으로 통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사랑’으로 맺어지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함께 동네 주민들을 진료하다가 전염병으로 죽는 바자로프는 모든 것을 부정하며 살았지만, 죽음 앞에서는 결국 단 한 가지를 인정하고 만다. 바로 ‘부모님의 사랑’이다. 그것은 신식이었던 구식이었든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 아버지가 무슨 소리를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러시아가 대단한 사람을 잃어버리게 되었다고 했겠지요.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노인네의 희망을 깨지는 말아 주십시오. 어린애를 달랠 수만 있다면 어떤 장난감이든 상관없잖아요. 우리 어머니에게도 친절하게 대해 주십시오. 우리 부모님 같은 분들은 당신네 상류사회에서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을 거예요. 러시아가 절 필요로한다고요? 아닙니다. 아마도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럼 누구를 필요로 할까요? 제화공이, 재봉사가 필요합니다. -본문 중에서

격변의 시대의 세대간 갈등에 관한 이슈는 지금도 유효하다. 여전히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살고 있고, 진보와 보수, 자식과 부모의 생각 차이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치기어린 젊은이는 그들의 생각이 전부고, 오랜 시간을 견뎌온 부모의 세대는 자식들이 좋은 길을 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의 생각들을 펼쳐낸다. 이러한 갈등은 생명이 있는 한 계속될 수밖에 없는 법. 그럼에도 시간은 서로를 이해할 기회를 끊임없이 만들어주며, 결국은 ‘사랑’으로 그 간극을 메우기를 기다려 준다.

그 아무리 격렬하고 죄 많은, 반항적 영혼이 그 무덤에 숨겨졌다 해도 그 위에 피어나는 꽃들은 죄 없는 눈으로 우리를 잔잔히 바라본다. 그 꽃들이 그저 영원한 안식이나 무심한 자연의 정적만을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은 아니다. 영원한 화해와 무한한 생명에 대해서도 말해 주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