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소식 7월호

학교상담(school counseling)이 일반상담(therapeutic counseling)과 다른 점은 부적응 문제를 보이는 아동만을 상담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그와 유사한 문제를 보일 수 있는 다른 아이들까지도 상담대상에 포함시킨다는 점이다. 따라서 학교상담에선 그 대상을 모든 학생으로 보며 전교생에게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실시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그 취지를 실현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우선 우리 학교의 상담교사는 나 혼자인데 도움을 주어야 할 학생은 1500여명에 이른다. 한번은 교장 선생님이 물으셨다. “오 선생, 상담실에서 상담받는 학생들이 전

교생의 몇 퍼센트 되지요?” 개인 상담을 실시하는 몇몇 학생들로 계산해 보니 3%도 아닌 0.3%였다. “0.3 퍼센트? 혜택받는 학생들이 그 정도밖에 안 되는데 상담실 예산이 너무 많은 거 아니에요?” 이처럼 경제적인 논리만으로 교육을 설명할 수 없지만 교육에도 경제적인 원리가 적용되기에 그 지적은 일리가 있었다.
나 혼자 상담실을 운영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미국의 상담교사협회(ASCA: American School Counselor Association)에선 재적학생 300명당 1명의 상담교사 배치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 학교의 경우 상담교사(full-time)가 적어도 5명은 있어야 되는 셈이었다. 고민 끝에 상담자원봉사자를 모집하기로 하고 ‘마음이 따뜻한 분을 모십니다’라는 편지글을 전교생에게 보냈다. “사람이 사람을 돕는 것만큼 아름다운 일이 있을까요? 우리 주변에는 사랑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학교도 예외는 아니랍니다. 학부모님들의 관심과 사랑이 상처난 어린 아이들의 마음을 싸매어 줄 때 그 따뜻한 사랑이 아이를 회복시키고 변화시키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되지요. 물건은 나누면 반이 되지만 사랑은 나누면 배가 되는 진리가 저희 ‘따뜻한 이야기 방’(상담실)에서 일어나고 있답니다. (중략)” 학부모들의 참여를 호소하는 통신문은 학부모님 네 분의 마음을 움직였다. 두 분은 전직교사셨고 한 분은 목사님 사모님, 그리고 한 분은 시립상담소 근무 경험이 계신 분이셨다. 이 분들을 위해 15시간 상담 연수 프로그램을 만들어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스터디와 실습을 하면서 상담활동 준비를 했다.

그런데 적용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다. 이분들이 정말 상담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자질과 자격을 가졌는가와 학부모들인만큼 상담내용에 대한 비밀보장이 지켜질 수 있는가 하는 두 가지 문제였다. 첫 번째 자격문제는 서울시교육과학연구원에서 실시하는 상담봉사자연수(60시간)에 참여케 하고 이를 통해 서울시학생상담자원봉사자로 위촉을 받게 하였다. 또한 이 분들은 매달 4시간 정도의 보수교육을 받으면서 계속적으로 상담의 전문성을 신장하고 계신다. 자격문제는 이렇게 해결되었는데 비밀보장과 상담자-내담자의 관계 등의 문제는 여전히 과제로 남았다. 특히 자기 자녀가 이웃집 아주머니와 학교에서 상담을 한다는 사실을 내담 학생의 부모들이 불쾌하게 생각했다. 결국 개인상

담은 실시하지 않기로 하고 집단활동의 일환인 심성계발 활동에 초점을 맞추어 운영을 시작했다.
7차 교육과정부터 주당 2시간의 재량활동시간이 주어지는데 서울의 경우 그 중 1시간은 컴퓨터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한다. 나머지 한 시간은 그야말로 담임의 재량에 따라 시간이 운영된다. 이 재량활동 시간을 활용하여 학급을 네 개의 소집단으로 나누고 각 집단을 서로 다른 네 곳의 상담공간(상담실, 집단상담실, 영어실, 여교사휴게실)에서 네 분의 상담봉사자분들이 소집단 활동을 실시하는 식으로 진행하였다. 상담봉사자는 이후 연차적으로 증가해 아홉 분이 되었는데 네 분씩 두 팀을 이뤄 활동을 하니 한주 한 학년 8개반의 집단활동이 가능했다. 한 학년 당 5주 프로그램을 학생들의 발달수준과 적용 영역을 감안하여 3~6학년까지 실시하고 있는데 현재 연인원 5000여명의 학생들이 상담프로그램의 혜택을 받고 있다. 결국 교장선생님이 던지셨던 상담프로그램의 수혜 학생 비율은 완전히 해결된 셈이다.
이 프로그램을 실시한 지 벌써 4년째로 접어든다. 상담봉사자들은 집단활동을 반복적으로 운영하니 이젠 베테랑이 되었다. 한번은 상담원에서 개발한 ‘신기한 문방구’를 실시했는데 몇 차례 하시더니 ‘신기한 약국’이 좋겠다고 아이디어를 주셔서 지금은 문방구에서 마음의 물물교환을 실시하는 대신에 약사복을 입은 봉사자들이 처방전을 써 주고 위약을 주는 활동으로 변형하여 더 큰 효과를 보고 있다. 시각장애인 안내하기 활동 역시 처음에는 일반적인 활동지침서 수준에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목장갑을 재봉틀로 붙인 후 끼게 해서 신체장애인의 역할을 하는 아동과 안대를 낀 아동이 짝이 되어 징검다리를 통과하고 풍선을 불어 터뜨린 후 장애물을 통과하여 사탕을 먹여주는 활동으로 발전시켜 활동하신다.
무엇보다 이 활동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활동 후 일기로 소감을 쓰게 하는 등 담임교사와의 협조를 통해 과제 및 연계활동을 지속적으로 실시했는데 일기에 나타난 학생들의 소감에 놀라는 담임교사들이 있었다. 한번은 시각장애인 체험하기 활동 후에 “사실은요. 저희 아빠가 장님이에요”라는 발언을 한 학생이 했다. 활동체험 후 아빠에 대한 공감을 느꼈던 학생은 지금까지 부끄럽다고 생각했던 생각을 자신있게 표현했고 이 용기있는 행동에 대해 상담자는 긍정적으로 반응해 주었다. 특히 친구들의 긍정적 피드백으로 이 학생이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마음 한 구석의 아빠에 대한 생각과 태도가 변화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믿는다. 이와 같은 학생들의 작은 변화들이 일기에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났다.
처음에는 많은 활동에 힘들어하시던 분들도 학생들의 변화와 같은 상담의 맛을 체험하자 사명감이 생기는 모양이었다. 한 봉사자는 늘 이른 아침에 상담실에 오셔서 홀로 기도를 하신 후에 활동을 시작하시기도 하셨다. 이번 학기 활동을 마친 지난 주에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집단 따돌림을 체험하는 활동을 실시했는데 집단들이 모두 울음바다가 되었다. 3학년 학생들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그 동안 ‘따’를 당한 경험을 얘기하며 감정에 복받쳐 울음을 터뜨렸는데 공교롭게도 각 집단에 그러한 학생들이 한 명 이상 있었던 것이다. 한 명이 울기 시작하면 여럿이 덩달아 우는 3학년 아이들의 특성도 있지만 왕따의 경험과 관련된 활동에 학생들이 이렇게 몰입하여 진행한다는 사실에 상담봉사자도 매우 놀란 표정이었다. 한 봉사자는 “사실 봉사활동을 하면서 상담보다는 교육활동이라고 생각을 많이 해왔는데 이번 활동을 통해서는 정말 상담의 위력이 이런 것이구나 실감했어요”라며 상기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미국의 상담교사협회(ASCA)에선 초등학교의 경우 상담교사가 해야 할 역할 중에서 개인상담과 같은 반응서비스(responsive service)보다는 예방적 차원의 생활지도 교육과정(guidance curriculum)을 보다 많이 실시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고 보면 예방적 차원의 상담 프로그램은 우리의 현행 교육과정에서 재량활동 시간을 통해 가능하고 이 활동은 상담교사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상담봉사자를 통해 운영될 수 있다고 본다. 현재 서울시 초등학교의 경우 우리 학교와 같이 학부모들로 구성된 상담봉사자들이 219학교에서, 826분이 활동하고 계시며 그 수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학교상담이 제도화되지 못해 상담교사도 없는 형편이지만 이처럼 상담봉사자를 통한 상담활동은 오히려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