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소식 7월호

영화를 보면서 누구에게 강하게 끌리는지, 그 사람이 동일시하는 인물이 누구인가에 따라 한 편의 영화에 대한 수많은 새로운 이야기가 파생되곤 한다. 몰입의 대상에 따라 각자의 영화 기호와 취향과 가치가 고스란히 반영되기 때문이다.

<트로이>의 경우 크게 네 인물이 감정이입의 대상으로 떠오를 수 있다. 우선 브래드 피트가 열연한 ‘아킬레스’가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영역으로부터 인간에게 초점을 맞춘 이번 <트로이>에서 유일하게 신과 인간의 경계에 선 인물이 바로 아킬레스이다. 명예를 갈구하는 남자의 욕망을 중심에 놓은 이 영화에서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자 하는 열망은 당시 무수했던 어느 왕국에도 속하지 않은 아킬레스에게도 전쟁에 참여할 명분으로 작용한다. 왕국에 대한 충성심이 결여된 아킬레스는 ‘프로 전사’로 남게 해 전쟁 자체를 즐기고 그에 따른 승리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오만함마저 갖고 있다. 이런 아킬레스를 변화시키는 건 트로이의 사제 ‘브리세이즈’와 운명적인 사랑. 이때부터 사랑도 전쟁도 그에겐 전혀 다른 새로운 것으로 다가오게 된다.

두 번째로 눈에 띄는 인물은 트로이의 첫째 왕자 ‘헥토르(에릭 바나 분)’와 그의 아버지 ‘프리아모스 왕(피터 오툴 분)‘이다. 둘째 왕자 ‘파리스(올랜도 블룸 분)’의 무모한 사랑으로 벌어진 트로이 전쟁의 희생자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이다. 왕위를 물려받을 장자로서 동생의 비겁함과 나약함을 대신해 희생되고 마는 헥토르. 그는 형제애와 가족애, 나아가 왕국에 대한 사랑을 몸소 실천해 보여줌으로써 동생의 용기를 자극한다. 또한 이 형제의 아버지 프리아모스 왕은 적진에 들어가 아들의 시신을 수습하고자 아킬레스에게 무릎을 꿇는 뜨거운 사랑을 보여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보는 이의 마음을 붙드는 인물은 파리스 왕자가 아닐까 싶다. 신과 영웅들이 활약하던 그 시절, 소심하고 비겁하고 지나치게 즉흥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그래서 전쟁의 일차적 구실을 만들었던 파리스. 연적과의 결투를 자청해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도망쳐 목숨을 구걸하는 나약한 모습에 공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실망을 금치 못하게 한 인물. 그렇지만 설익었던 파리스는 아버지와 형의 죽음 이후 드디어 성인으로 부쩍 자란다. 전쟁이 한창인 중에도 활쏘기를 맹연습, 결국은 아킬레스의 취약점인 발목 뒷부분에 화살을 명중시켜 형과 트로이에 대한 복수를 마무리짓는다.

따라서 <트로이>는 파리스의 성장기적 영화라고 말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소년에서 진정한 남자로 거듭나는 그를 보면서 인간으로서의 존재감과 가능성에 대해 질문하게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