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장가 보낼 때도 부모들은 허리가
휜다. 이 나라의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크게 잘못되어 있다.
“아이고, 내 새끼야”라는 가족지상주의는 더 이상 사랑도 헌신도
아닌 것 같다. “아이고, 내 새끼야”의 정서는 매년 어린이날마다
북새통을 이룬다. 어린이날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어린이, 미래의
주인인 공동체의 어린이날이 아니다. 어린이날은 다만 ‘내 새끼’의
날이다. 내 새끼 손목잡고 나가서 외식하고 놀이기구 타는 날인
것이다. 나는 이런 어린이날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근처에 고등학교가 있어서, 내가 사는 마을은 늘 활기차고, 어린
것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여고생들은 한 명이 웃으면 모두가
일제히 까르르 웃는다. 그들의 웃음의 감염속도는 빠르다. 학교
앞 라면가게는 늘 왁자지껄한 활기 속에서 성업 중이다. 그들은
늘 이야기와 웃음이 넘쳐난다. 거리에서, 버스 안에서, 라면가게에서
그들을 볼 때마다, 인간은 아름답고 빛나는 존재라는 믿음으로
나는 늘 행복했다.
지난번 수능시험 때는 이른 아침부터 2학년 학생들이 고사장 문
앞에서 진을 쳤다. 2학년 학생들은 꽹과리와 북을 두들기며 고사장으로
들어가는 3학년 학생을 응원했다. 끌어안고 볼을 부비고 등을
두들겼다. 고함을 지르면서 춤을 추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들은
지옥으로 들어가는 문턱에서 한바탕의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아무리
꽹과리를 울리고 북을 두드린들 다들 일류대학에 들어갈 수는 없다.
훨씬 더 많은 학생들이 실패해서 상처받을 것이었다. 그러나 고사장
문 앞에서 그들은 한바탕 신나게 놀고 있었다. 그들의 신명은
가엾고도 아름다워 보였다.
수능고사장 문 앞에서 어린 것들의 생명의 활기는 눈부셨다. 그리고
그 생명의 자연성을 짓밟고 학대하는 조건들이 무엇인지도 확실히
보였다.
다들 내 새끼만을 끌어안고 있는 세상에서는, 어느 누구의 자식도
온전히 키울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일보 문학담당 기자,
시사저널 편집장 등을 역임한 김훈 씨는 <칼의 노래>로
2001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자전거 여행><선택과
옹호><풍경과 상처><빗살무늬 토기의
추억> 등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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