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소식 1월호

연세대 명예교수 최정훈 박사(72)는 국내 상담학계에 인본주의 심리학을 처음으로 소개한 공헌자이다. 인간이 자유의지와 지각능력을 갖고 있는 만큼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존재로 설 수있도록 상담을 통해서 접근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국내에 인본주의 심리학의 씨앗을 뿌려온 그는 긍정적 지각주의자라고도 불린다.

▲ 박사님께서는 상담심리학자로서 전공분야에서의 학문적 연구는 물론, 연대에 심리학과를 설립하고 또 대학상담소를 만드는 등 탁월한 교육행정 능력을 발휘하시고 정년퇴임하셨는데 요즘 어떤 일을 하며 지내시는지요?
80년대는 수도권 인구억제책 등으로 대학의 증원이나 학과 신설이 어려운 때였습니다. 그러나 연세대에서 심리학 같은 고급 학문을 연구해서 봉사를 해야 한다며 당시 이규호 문교부장관이 서울과 연대 원주캠퍼스에 심리학과를 만들고 50명씩 뽑도록 해주었지요. 나중에 서울에만 심리학과를 개설하고 원주는 심리학과 설치 대신 법학과 증원으로 돌렸지만요. 요즘은 일주일에 하루정도는 한국심리상담연구소의 운영위원으로 나가고, 또 하루는 21세기크리스천연구원 부원장 일, 기타 기독교리더십연구원 등에 나가 상담 강의를 하고 저술활동을 하고 있지요.
▲ 상담심리학에 입문하신 계기를 들려주십시오.
일찍이 미국에서 생활을 하신 선친은 장차 공대가 유망할 것이라며 공대를 권하셨으나 저는 인문학쪽에 관심이 있어 인문계열을 택했습니다. 50년 연대에 입학했는데 곧바로 6.25가 터져서 군에 입대해 장교로 활동해야 했습니다. 53년 휴전이 되었으나 제대를 시켜주지 않았어요. 유학간다고 해야 간신히 ‘유학제대’를 시켜주었는데 정작 유학을 떠나려고 했더니 군에서 앓았던 결핵 때문에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복학을 해서 나이 어린 후배들과 함께 공부를 했습니다. 군대에서 죽을 고비를 세 번쯤 겪고 보니 못 할 것이 없다는 배짱이 생겼어요. 당시는 김기석 박사님께서 미국유학을 마치고 돌아오신 때였는데 공부를 좀 했더니 대학원 마지막 학기부터는 ‘교육평가’ 강의를 하라고 하시더군요. 요즘 같으면 생각도 못할 일이었지요. 대학원을 마치고 66년 연대에서 유학을 보내줘서 스탠포드대에 가서 심리학 석사를 했습니다.
▲ 인본주의 상담을 하시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66년 스탠포드대에 유학 가니 미국의 상담심리학계에는 행동주의적 분석에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이 행동주의 심리학은 국내에도 큰 영향을 미쳐서 1968년에 이성진 박사가 한국행동과학연구소를 만들어 강연을 하고 붐을 일으켰지요. 또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을 빼고 나면 한편에서는 정신분석으로 인간의 모든 부적응이나 병리행동을 치료할 수 있다고 믿는 정신분석 심리학도 유행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는데 환경이나 과거의 생활경험에만 인간이 지배된다는 행동주의 심리학의 결정론에 만족할 수 없었지요. 자연히 인간을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존재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강조해온 인본주의 상담학쪽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석사를 마치니까 연대에서 들어오라고 하는데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에 학비가 싼 콜로라도 주립대학으로 옮겼습니다. 마침 이곳은 교수들의 절반 이상이 인본주의 심리학을 연구를 하는 분위기여서 자연히 마음껏 인본주의 심리학을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 선생님은 긍정주의적 지각주의자라는 별칭을 들으시는 것 같은데요. 그 관점은 무엇입니까?
인본주의 심리학자들은 인간이 무엇으로 성장할 수 있느냐 하는 견지에서 현실뿐 아니라 가능성까지 봅니다. 행동주의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에서는 인간을 단면만을 보고 있지만 인간의 행동이 환경이나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나 인본주의 심리학자들은 환경과 문화의 궁극적인 영향이 결국 각 개인이 가지는 지각 능력이나 대내외적인 요인에 대한 독특한 견해와 태도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고 있지요.
▲ 연대 대학상담소를 훌륭하게 키워놓으셨는데 기억에 남아있는 상담케이스는 어떤 것인지요?
연세대생이라고 하면 흔히들 중류 이상의 자녀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상담해 보면 경제적 고통을 겪는 학생들도 많고 자살까지 심각하게 고민하는 학생들도 많았습니다. 몇 번 찾아왔던 한 학생이 얼마동안 소식이 없길래 궁금했는데 어느날 음독을 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급히 달려가서 학생을 싣고 집안사람이 근무하는 병원으로 옮겨 응급처치를 해서 살려냈지요. 그 학생은 나중에 훌륭한 사회인이 되었으며, 저를 생명의 은인으로 생각해서 해마다 인사를 와요. 대학 입학만을 지상 최대의 과제로 삼아온 요즘의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해서 겪는 위기와 방황을 위해서도 대학상담소의 할일은 많으며, 생애지도 쪽에서도 도움을 줄 수 있어야합니다.
▲ 요즘의 청소년문제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나는 긍정적인 지각주의자라는 말대로 우리사회의 청소년의 문제를 지나치게 심각하게 보는 것을 찬성하지 않아요. 인간의 본성을 자유스럽게 내버려 두면 자기 지향을 위하여 노력하며, 인간을 완전히 신뢰할 때 개인이나 사회에 행복이 올 수 있다고 신봉하는 편이지요.
▲ 한국심리학회, 한국카운슬러협회 회장등을 지내셨는데 초창기의 이야기를 해주십시오.
내가 카운슬러협회 회장으로 활동하던 때는 한국산업인력공단 안에 사무실을 두고 산업심리학과 관련된 일들도 했습니다. 한국심리학계 초창기 이야기를 하자면 1970년경 상담전공자 세분과 임상상담 전공 세분 등 6명이 서울 동숭동 문리대 근처에 모여서 우리도 APA식으로 상담과 임상의 전문가들을 양성하자는 이야기를 했어요. 즉 ‘전문 자격증’을 만들자고 하고 6명이 한 문제씩 출제를 해서 시험을 치르고, 바꿔 채점하여 자격증을 수여하였어요. 그 당시는 갑종, 을종으로 구분을 했는데 김기석 선생님이 갑종 상담사 1호였고 내가 3호였으며, 임상분야에서는 경북대에 계셨던 이상태 선생님이 1호였어요.
지금 심리학회가 국가공인 자격증을 만들겠다고 하고 또 여러 군데에서 자격증을 만들고 있는데, 이곳저곳 눈치 보고 할 것이 아니라 권위를 인정 받을 수 있도록 수준을 올려서 당당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 상담학의 미래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전통 가정에서 아이들은 가족 내에서 고민을 해결하며 존중받고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부모도, 선생님도, 친구도 자신의 존재를 알아주지 않으니까 상담이 점점 더 필요해지는 것이지요. 상담은 사람을 돕는 전문적인 일이지요. 요즘 교회나 사회, 학교등 곳곳에서 상담이 보편화 되고 있으나 이럴수록 전문적인 상담이 필요합니다. 저는 학교상담 자원봉사교육이나 교회의 상담자 교육을 갈 때 그들에게 상담이 일상화되어갈수록 초보적 수준의 봉사체제로 그쳐서는 안된다는 것을 일깨웁니다. “환자의 병을 치료하는 의사가 10년을 공부하듯이 상담의 내용을 전문화시켜서 피상담자의 내면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 합니다. 청소년상담사 국가 자격증이 생겼는데 상담의 일상화는 물론, 전문화를 더욱 촉진시켜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최수미 상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