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이야기
우리 애가 하루종일 오락만 해요.
저희 아이는 고등학교 2학년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컴퓨터 오락에만 빠져 살아요. 어려서부터 오락하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이젠 아예 방에 틀어박혀 오락만 하고 있으니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이제 고2라 공부도 해야 하고, 대입 준비도 해야 하는데, 공부도 웬만큼 하고, 모범적으로 생활하던 아이였는데, 고등학교 오면서 많이 변한 것 같아요. 말도 잘 안하고, 얘기 좀 붙이려 하면 짜증만 내고, 애 아버지는 성격이 불같아서 야단도 치는데, 별로 소용이 없는 것 같아요.

오락하느라 밤늦게까지 자지도 않고, 또 그 때문에 아침에 늦게 일어나기 일쑤예요. 허겁지겁 겨우겨우 학교를 가니 공부가 어디 제대로 되겠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고 답답하네요. 좀 도와주세요.
공부를 더 열심히 할 것으로 기대하는 시기에 이런 어려움이 생겨 많이 조급하시고 답답하실 것 같습니다. 고2라고 하니 더더욱 부모님 입장에서는 아이를 이해하기 어렵고, 불안하시리란 생각이 들어 안타깝습니다.

아이가 고등학생이 된 후 말도 없어지고, 짜증이 늘면서 오락에 몰입하는 시간이 늘어났다고 하셨지요? 어머니께서는 아이가 그렇게 빠져들게 된 오락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대개 일반적으로 부모님 입장에서는 '좋지 않은 것'이나 '공부에 방해되는 것', 또는 '단순한 놀이' 등으로 오락을 생각하곤 하십니다. 물론 그러한 입장이 그르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청소년들이 겪게 되는 다른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이 오락 문제 또한 옳고 그른 것을 가리는 입장에서의 접근은 별로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먼저 청소년들이 왜 이렇게 오락에 빠져들게 되는지 그 이유나 배경에 대해서 이해하시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첫 번째로 전자오락이나 컴퓨터 오락은 가상을 현실화한다고 합니다. 즉, 자신이 직접 오락 속의 주인공을 움직이기 때문에 주인공과 자신이 일치되는 경험을 하게 되고, 현실감 있는 상황에서 치고 박고하면서 자신의 공격성과 분노를 표출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단순한 놀이차원 뿐 아니라 현실과 같이 느껴지는 장을 통해 자신의 어떠한 욕구를 충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어떤 한 조사에 따르면, 연령에 따라 오락에 빠지게 되는 이유가 다르다고 하는데, 오락 자체의 재미를 추구하는 초, 중등학생과는 달리 고등학생은 현실의 도피처로서 오락을 선택하게 된다고 합니다. 즉,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이를 적절하게 해결하지 못할 때 오락이라는 수단을 사용하여 그 현실을 회피하려 한다는 것이지요. 특히 우리나라처럼 입시 경쟁의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에서는 너무나도 이해가 가능한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혹시 아이도 이러한 스트레스로 인한 회피는 아닌지 주의 깊게 살펴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세 번째로, 어떤 성격적 특성 때문에 오락에 빠져들 가능성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성적이고 자기표현을 적절하게 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경우, 대인관계에서 만족감을 얻기 어려우며, 잘 표현되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에 만족을 줄만한 무엇인가를 찾다가 오락을 접하면서 만족감을 느끼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이의 성격적 측면과 대인관계 패턴을 살펴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네 번째로, 가족 내의 어떠한 갈등 요소 때문에 오락에 빠져들 가능성도 고려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오락에 빠지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조사에 따르면 그 가정 상당수가 부모 자식 간에 대화가 없거나, 부모간의 불화가 심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부모에게서 자신이 수용되고 인정되는 경험이 부족한 아이들은 자신이 몰입할 수 있는 다른 대상을 찾게 되는데, 그 대상으로 오락이 선택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차원에서 오락에 빠지게 되는 이유를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의 경우 고등학교에 들어오면서부터 변한 모습을 보였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학업은 질적으로 많이 다른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로 인한 학업상의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으며, 새로운 친구들과 겪게 되는 적응상의 문제가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이에 대해 털어 놓거나 의논할 대상이 없었다면, 본인이 겪는 고통은 결코 작지 않았을 것이며, 이러한 문제를 직면하지 않기 위한 수단으로 오락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만일 이런 경우라면, 오락 자체의 문제보다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성적이나 학교생활에 대한 정보 또한 매우 중요할 것이므로 담임선생님과의 면담을 통해 그에 관한 정보를 얻으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또한 아이와의 대화가 필요한데, 이런 경우 오락에 빠진 것에 대한 비난이나 공부할 것에 대한 설득보다는 아이가 경험하는 문제에 대해 공감하는 입장에서 얘기를 나누시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가족에서 우리 아이가 자신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파악해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혹시 가족, 특히 부모님의 기대를 아이가 부담스러워하지는 않는지, 자신의 욕구와 부모님의 기대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지는 않은지, 아이가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충분히 가족들이 인정하고 신뢰하는지, 아이가 불만이나 어려움을 털어 놓을 수 있는 대화상대가 가족 중에 있는지 검토해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버님께서 매우 엄하신 것으로 말씀하셨는데, 그런 분위기로 인해 아이가 부담을 느끼지는 않는지도 고려해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머님뿐만 아니라 아버님의 협조 또한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만일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 때문에 오락으로 회피한 경우라면, 야단이나 처벌로는 해결되기 어려우므로, 근본적인 문제를 찾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아이의 어렵고 힘든 마음에 대해서 이해해주시는 태도로 대화의 길을 열어 놓으시면, 아이도 자신의 어려움을 털어 놓을 것이며, 털어 놓는 과정에서 회피가 아닌 해결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있는 그대로 수용되고 인정받는다는 것을 느낄 때, 자신에 대한 존중감과 자신감이 높아질 것이며, 자신의 행동에 대한 통제력도 증가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얘기가 되면서 동시에 오락에 대한 문제도 다루시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보입니다. 물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어 간다면, 아이 스스로 오락을 통제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만, 일정시간을 정해놓고 오락을 할 수 있도록 정해놓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입이라는 과제 때문에 부모님도 아이도 모두 조급해하실 수 있는 상황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급하게 표면에 드러난 문제행동만을 막으려 한다면, 그 행동을 변화시키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좀 더 아이의 마음에 있는 어려움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이해하며 해결해 나갈 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