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였다. 그런 태도는 친구들을 더욱 질리게
만들었고, 어느 때부턴가 더 이상 아무도 민혜와 가까이 지내려고 하지 않았다.
완벽한 따돌림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로 인한 정서적인 문제가 커지자 민혜의
담임 선생님이 부모님에게 의논하게 되었고, 결국 민혜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병원에 오게 된 것이었다.
민혜는 심리검사 결과 매우 충동적이고 버릇없고 자기만 아는 고집스러운 면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이나 배려의 마음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무슨 일이나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분노하는 특성을
보이기도 했다. 보통 수준의 자제심을 민혜에게서는 기대할 수 없었다.
상담이 진행되면서 어느 정도 이유가 밝혀졌다. 민혜에게는 교통사고로 크게
다쳐 장기 입원중인 오빠가 있었다. 부모님은 그 오빠를 돌보느라 민혜에게는
거의 신경을 쓰지 못했다. 사춘기에 들어선 민혜는 부모님의 관심을 끌려고
시도해 보았지만 실패하자 자신도 모르게 방어벽을 쌓아갔다. 멋대로 행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건방지게 굴고 이기적이거나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화를 참지 못하는 날들이 많아졌던 것이다.
오빠의 문제로 부모님들로부터 정서적인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대신 부모님은 민혜가 뭘 하든 원하는 대로 하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민혜는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서 감정조절이나 충동조절에 대해 그 어떤 것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그런 요소들이 합쳐져서 거만하고 시기심 많고 신경증으로 가득 찬
소녀를 만들어낸 것이다.
민혜의 공주병이나 시기심 많은 성격, 분노 등은 민혜가 자신의 문제들을
헤쳐나가는 방어벽이나 다름없었다.
민혜와 비슷한 문제를 겪는 십대들을 보면 대부분 어린시절 경험한 정서적
박탈감, 배려받고 사랑받지 못하는 데 따른 결핍 등을 보상받는 방법의 하나로
스스로 우월하다는 기묘한 방어기제를 만들어내는 것을 볼 수 있다.
원인은 매우 복합적이다. 성격적으로 강하고 드라마틱한 기질을 가진 아이들은
자신의 불안정이나 결핍에 순순히 따르기보다 매우 공격적이고 반항적인 방법으로
그 결핍을 보상하려고 든다.
거기에 민혜처럼 똑똑하고 예쁘고 재능이 있는 경우, 아이는 그것을 이용해
남들의 관심과 주목을 끌기 위해 극적으로 행동하기도 한다. 그런 행동이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자기한테 원인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랬다가는
근근히 유지해 오는 방어벽이 한순간에 무너져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끝까지 모든 잘못을 상대방의 탓으로 돌리면서 자기는 여전히 우월하고
잘난 사람이란 생각을 버리려고 들지 않는 것이다.
또 다른 원인은 역시 가족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부모나 그 밖의 가족들이
얼마나 아이에게 안정되고 올바른 환경을 제공했느냐에 따라 아이의 태도는
많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부모나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민감하고 또 깊은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집안 분위기가 온화하고 가족들끼리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환경 속에서 성장하는 것이다. 그런 환경에서라면 아이는 대부분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건강하게 잘 성장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민혜의 경우처럼, 가족 사이에 어떤 문제가 생겨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계속되면 더불어 아이의 정신건강도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밖에도 부모가 폭군적으로 군림하는 타입이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희생적이고
과잉보호를 하는 경우에도 아이는 정서적인 지지나 안정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런 경우 대부분의 아이들은 걱정이 많고 불안정하며 적개심을 품고 고립된
채로 성장하게 된다. 그러면서 나름대로 방어벽을 쌓아나간다.
어떤 아이는 고집스러운 반항과 때때로 발작을 일으키는 것으로 부모에 대응한다.
어떤 아이는 자기 인생에 부모를 비롯한 다른 사람이 끼어드는 것을 철저하게
차단하는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 특히 십대 시절 그와 같은 고립을 택하는
아이들은 생각보다 많다. 그는 자기가 주인인 혼자만의 섬에 스스로를 가두고
어떤 외적 요구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때 다른 사람의 기대나 제안은 그에게
위협으로 간주될 뿐이다.
그와 같은 상태가 길어지다 보면 요즘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은둔형 외톨이가
되고 마는 것이다.
어떤 아이는 자기 감정을 다 억누르고 무조건 순종형이 되기도 한다. 부모에게
의존하는 것으로 자기 문제를 해결하려고 드는 것이다. 그러나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기는 마찬가지다. 앞서 예를 든 민혜의 경우와 매우 대비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어느 쪽이나 편협하고 신경증적인 양상을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다.
다행히 민혜의 경우는 뒤늦게 문제를 깨달은 부모님들에 의해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힘겨운 여러 가지 정신적 문제로
괴로움을 겪는 청소년들이 너무나 많다. 따라서 우리 사회는 좀더 적극적인
자세로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을 돌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뜻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어려운 조건 속에서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모든 열의를
쏟는 많은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해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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