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소식 3월호::::::

언젠가 디지털을 ‘돼지털’로 잘못 알아듣는 순박한 할머니의 TV광고가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디지털 세대와 아날로그 세대의 차이를 풍자한 재미있는 광고였다. 디지털은 어느 틈엔가 우리의 삶을 가득 채워 디지털 카메라, 핸드폰, MP3 플레이어, PDA등 지금 청소년들은 디지털의 문화 속에서 성장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밥은 굶어도 인터넷은 못 굶고 휴대폰 없이는 학교도 안 간다는 세대다. 지금 현재의 청소년들을 디지털 세대라고 할 때 이들은 기성세대인 아날로그 세대와 정말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이와 같은 세대간 가치와 인식의 차이에 관한 연구는 사회학자 제임스 콜만(James Coleman)에 의해 1961년에 처음 제기 되었는데 그는 광범위한 연구를 통해 부모와 자녀간의 가치는 완전히 배타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라, 중요시하는 가치가 서로 다르다는 점을 밝혀냈다. 이 연구에 의하면 부모들은 일관되게 학업과 성취도에 보다 많은 관심을 보이는 반면 자녀들은 친구관계와 취미활동 등을 보다 중요하게 여겼다. 이후 행해진 40여 년간의 다른 연구결과는 Coleman의 연구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부모들은 친구들과 어울리는 자녀들을 보며 성적이 떨어질까 걱정을 하고 자녀들은 늘 ‘공부 공부’하는 부모들이 자신들이 중요시하는 또래관계와 자기생활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시대를 거듭할수록 세대차를 더욱 느끼는 요인 중 하나는 청소년들을 둘러싼 문화적 특징의 변화를 꼽을 수 있다. 청소년 또래집단의 저명한 학자 브래드포드 브라운(Bradford Brown) 박사는 요즘 청소년들의 또래 문화적 특징을 요약하면서 과거에 비해 또래들끼리 보내는 시간이 급격하게 증가해 친구들 사이에서 이들의 가치가 보다 활발히 공유되고 이 가치가 견고하게 내면화된다는 점을 들었다. 이러한 변화는 맞벌이 부모가 증가하면서 부모의 조언과 충고가 부족한 상태에서 청소년들이 자신이 갖고 있는 가치를 절대화시키는 현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 추세는 디지털이라는 매체의 속성을 통해 보다 가속화되었다. 현재의 청소년들은 그들의 또래를 오프라인 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 사귀기 때문에 또래의 가치와 문화를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고 광범위하게 공유한다. 미니홈피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자신을 드러내고 친구를 사귀며 같은 생각과 가치를 가진 또래들끼리 온라인 커뮤니티를 형성해 나간다. 온라인을 통해 사귄 친구와 오프라인을 통해 사귄 친구사이에 친밀감의 차이를 많이 느끼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온라인 친구들을 다양한 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만나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벽을 넘어 또래의 영향력을 키워나간다.

저명한 인류학자 마가렛 미드(Margaret Mead)는 문화의 변화속도에 따라 청소년들이 사회화되는 과정을 3가지 문화로 구분한 바 있다. 문화의 변화속도가 느린 지역은 주로 성인이 청소년들에게 문화적 가치를 전해주지만 (postfigurative) 그 변화속도가 빨라지면 주로 또래를 통해서 가치가 전해지게 된다 (cofigurative). 나아가 그 변화속도가 오늘날과 같은 디지털 세대의 경우 급속도로 빠르기 때문에 오히려 역으로 청소년들이 성인을 사회화 시킨다고 보았다 (prefigurative). 실제로 핸드폰이 일상화된 요즘의 엄마, 아빠들은 자녀들에게 문자 메시지 보내는 법, 음성 사서함 이용하는 법, 이모티콘이 뜻하는 것들을 물어보면서 자녀에 의해 사회화되고 있다. 이처럼 오늘의 청소년들은 디

지털 사회속에서 성인을 사회화 시키면서 살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가치에 대해 보다 우월감을 가지기 쉽다. 따라서 엄지족(엄지손가락을 이용해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빨리 보내는 세대를 일컫는 신조어)들에겐 철자 하나 하나를 찾아가며 메시지를 쓰는 부모의 모습이 때로는 따분하고 한심해 보일 수도 있다.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성향이 개인주의적 사조와 연결되어 기성권위에 대한 도전의식이 강해지고, 자신의 자유와 개성을 중요시하는 오늘의 청소년 또래 문화를 형성하였다고 본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러한 분석과 이론들은 대부분 서양의 이론과 개념적 틀로 서양의 청소년들을 분석한 점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잘 아는 X세대는 1990년대 초반 미국에서 자기중심적이고 소비와 유행에 민감한 세대를 일컫는 용어로 처음 사용되었고 2000년 전후반에 등장한 Y, Z세대와 N세대 그리고 최근 미국에서 관심을 끌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 등은 미국의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그들의 청소년들의 특징을 대변한 말이었다. 심리학계는 이들이 보이는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문화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왔다.

그렇다면 한국 청소년들은 위에서 언급한 디지털 세대들과 어떤 다른 점을 지니는 것일까? 최근 한 광고회사가 중고등 및 대학생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질적 연구를 바탕으로 우리 청소년을 분석한 결과가 흥미롭다. 이 결과에 따르면 기존의 차가운 디지털 세대와 달리 우리 청소년들은 비인간적, 디지털 환경 속에서 자랐지만 인간적, 아날로그적 감성을 소유하고 있는 “포스트” 디지털 세대로 명명하였다. 그리고 분석된 이들의 핵심 코드 (H.E.A.R.T.S)중 몇 가지를 소개하면 인간관계(Human relations)를 형성하는 수단으로, 그리고 자신을 표현하기(Expression)위한 수단으로 디지털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따뜻한” 디지털 세대로 보여지는 우리의 청소년들은 개인주의적(individualism) 문화속에서 성장한 서양의 청소년들과 달리 동양의 집단주의적(collectivism) 문화 속에서 성장한 탓인지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한 정(情)에 민감하며 기계적 문화 속에서도 인간적 가치를 중요시한다는 점이 이목을 끈다. 기성세대의 우려와 달리 인터넷으로 인해 고립되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 나간다. 상담이 내담자와 상담자의 관계 형성이라고 볼 때 이들이 관계 형성을 위해 사용하는 디지털은 상담의 좋은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현재 다양한 형태로 확산되고 있는 사이버 상담은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청소년들의 새로운 문화를 이용한 상담의 한 분야임을 부인할 수 없다.

아날로그 세대에게 디지털은 학습의 대상이었지만 이들에겐 생활의 일부다. 이들은 이모티콘을 통해 감정을 교류하고 메신저를 통해 대화하며 아바타로 자신을 표현한다. 블로그로 일기를 쓰며 자신의 글과, 사진을 미니 홈피에 자신있게 알린다. 따라서 ‘( ^.^) ♥(^.^ ) 생일 추카추카’라는 아주 짧은 휴대폰 메시지가 아날로그 성인에게는 하나의 기계적 메모에 불과할 수 있지만 포스트 디지털 청소년에겐 감동의 메시지로 여겨질 수 있다. 이들은 아날로그의 정서를 가지고 있으면서 디지털 매체를 통해 이를 극대화 시킬 수 있는 잠재성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청소년들은 상당한 시간을 디지털 매체에 사용하고 있다. 이들의 정서와 행동을 디지털 매체의 부정적인 획일적 틀로 바라보지 않고 디지털 문화에서 따뜻하고 인간적인 청소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포스트 디지털 세대가 보여준 인간적인 잠재능력을 계발하는 교육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