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상담소식 11월호

수많은 저서를 통해 일반인들에게까지 인지발달론을 토대로 한 자녀교육 방법을 설파한 김재은 박사(73). 현재 이화여대 명예교수인 그분은 큰아드님이 설계해 지었다는 연남동의 한 빌딩에 창의성교육연구소를 열고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계셨다. 여러 곳을 여행하며 직접 그리셨다는 수준급 펜화와 골동품 등 갖가지 물건들이 가득한 사무실 풍경이 나이를 먹지 않는 그분의 창작열과 호기심을 대변하는 듯 했다. 학창시절 그분의 명강의는 유명했다. 인터뷰를 하며 여러 분야에 걸친 박식함, 그 달변은 바로 지치지 않는 호기심과 열린 마음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 교수님께서는 발달심리분야 전문가로 명성이 높으신데요. 발달심리와 상담과의 연관성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나는 1959년부터 이화여대 교육심리학과에 재직해왔는데 초기에는 심리측정학, 통계적 방법, 교육평가, 연구방법론 등을 가르쳤습니다. 62년부터는 김태련 교수에게 통계와 심리측정을 일임하고 발달심리와 연구방법론을 주로 다루게 되었지요. 발달심리중에서도 인지발달이 내 연구관심사였습니다. 발달심리학은 상담학과 아주 깊은 관련이 있지요. 첫째, 인간의 심리적 문제 즉 혼자서 해결하기 어려운 심리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의 본질이나 근원에 대해 이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그 문제가 어린 시절 가족간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인지 최근 사건에서 기인하는 것인지를 아는 것은 상담에서도 필수적인 조건이지요. 일부 학자중에는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는 사람도 있지만 근원에 대한 이해가 문제해결에 이바지하는 것은 사실이고 그런 경우 발달심리학의 연구성과는 크게 유효합니다. 둘째, 인간의 문제는 다분히 발달단계에 따라 그 성질이 다릅니다. 각 발달단계마다의 과업이 있는데 그 과업이 문제를 발생시키는 배후관련적인 조건이 되는 것이지요. 셋째, 문제해결에 있어 예후(prognosis)를 세울 때는 나이라는 변수를 고려하게 됩니다. “그 나이에, 이미 늦었어.” 등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 발달심리는 그 사람을 판단하는 기초가 됩니다.
▲ 선생님께서 상담학분야에서 하신 활동들을 말씀해주십시오.
80년대 말부터 몇해동안 서울시 카운슬러협회 부회장 일을 했습니다. 이 협회는 주로 서울 시내 중쪾고등학교 상담교사들로 구성된 모임인데 대학교수들을 모셔다 강의를 많이 듣게 하고 재교육하는 일을 주로 맡아서 했습니다. 당시 무학여고 교장이던 심춘섭 선생, 혜원여고 교장이던 홍소자 선생 두 분 회장님을 모시고 일했지요. 그밖에 지금은 복지법인이지만 그때 당시에는 기독교단체에서 만들었던 생명의 전화에서 무보수 상담도 했고 몇 년 동안은 그곳 상담자원봉사자교육을 위해 봉사도 했습니다. 그밖에 1961년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개설된 상담센터인 이화여대 학생생활지도연구소에서 94년부터 2년동안 소장을 맡아 일도 했지요. 학생생활연구소를 서울대가 처음 시작했다고들 말하지만 서울대보다 먼저 이화대학이 문을 열었었고 상담에 대해서도 먼저 생각해서 만들어진 기구입니다.
▲ 이화여대 학생생활연구소 소장을 지내시며 역점을 두어 하셨던 일은 무엇인지요?
지금은 그곳이 상담센터로 탈바꿈해 운영되고 있는데 내가 소장이었을 때는 상담기능과 연구기능을 둘다 중요시해 운영했습니다. 지금은 그 연구기능이 없어진 것 같아 아쉽습니다. 나는 학생들이 상담에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 정신건강주간행사, 선배와의 대화 등 이벤트성 행사들을 많이 계획했습니다. 외부 전문강사를 초빙해서 강의도 듣게 하고 학생들 스스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해결하는 식의 이벤트를 벌였고 연구활동도 활발하게 한 편이지요.
▲ 늦둥이 손녀를 보시고 기뻐하시던 모습이 생생한데요. 손녀따님을 지켜보시면서 혹시 선생님이 펼쳐오신 발달심리이론과 현실과의 차이점을 느끼시는지요? 또 요즘 청소년들을 어떻게 발달심리에 맞게 상담해야 되는지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십시오.
손녀기르는 재미에 정말 폭 빠져 있어요. 첫 손녀이기도 해서 더욱 그런가봅니다. 매번 아이를 볼 때마다 행동, 발달의 특징을 기록하고 있지요. 지난 10월호 ‘베이비’란 잡지에 ‘교육학자는 손녀를 어떻게 키우나’라는 제목으로 인터뷰한 게 있는데 한번 보세요. 발달심리이론과 현실과의 차이점을 얘기해달라고 했는데 내 경우는 손녀를 키우면서 처박아두었던 옛 책들을 다시 꺼내 읽게 되었고 발달심리이론이 정말 오묘하구나 하고 새롭게 이해하는 부분도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요즘 청소년들에 대해 말하자면 그들을 흔히 N세대니, X세대니 하는데 다 일리가 있어요. N세대며 X세대란 말들은 학자들이 붙인 이름이지만 지금 세대에게는 아주 특이하게 다른 점 몇가지가 있다고 봅니다. 우선 그들은 앞선 세대와 문화적으로 단절된 집단입니다. 먹는 음식, 입는 옷, 하는 말, 보는 책, 보는 영상, 영화, 놀이와 대인관계, 목표, 의식구조, 행동양식 등 모든 면에서 다르지요. 그래서 이들을 대할 때는 다르다는 것을 일단 받아들이는 전제 하에서 상담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다르다는 것이 그들의 본질적인 면의 일부라는 점을 인식해야한다는 거죠. 차이를 받아들이지 않고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기 힘들어요. 의식의 개인주의화, 언어의 생략화 내지 왜곡, 목표의 다양화와 개성화, 가치의식의 다채널화 등등 우리 어른 세대와는 다른 측면들을 이해해야 합니다.
▲ 창의성개발과 뇌 연구 등에도 조예가 깊으신데 상담을 하는 후학들이 창의성을 개발하면서 상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상담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창의적인 사고 훈련은 가능하지요. 상담자는 발문(發問)을 잘 해야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나’ ‘왜 그렇게 생각하니?’ ‘이런 생각은 어떨까?’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까?’ ‘만일 그 반대의 의견을 말한다면 너는 어떻게 대답하겠니?’ 등등의 발문을 통해 상담자는 학생들에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습니다. 생각을 해야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들어낼 수 있지요. 다른 사람과 다른 생각, 아이디어, 논리, 근거를 찾고 새로운 해답을 만들어보도록 자극을 주는 것입니다. 한편 과거의 생각과 관념에만 매달리지 말고 새로운 관점에서 아이디어를 생산해내도록 자극할 수도 있습니다. 대개 상담이 필요한 사람들(문제해결을 잘 못하는 사람들)은 상상력이 부족하다고도 합니다. 문제를 보는 각도도 바꾸어보고, 문제해결방식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해본다면 해결의 실마리가 용이하게 잡힐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현재의 경험대상이 아닌 상황을 머리로 꾸며내는 상상력을 통해서 내담자들에게 문제해결을 하도록 하는 방식을 접목해볼 수도 있습니다. 상상력은 창의성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상담자가 내담자들에게 머리로 생각해낼 수 있는 여러 가지, 가능한 모든 해답을 생각해내도록 자극을 주면 창의성도 길러지고 문제해결도 쉽게 될 것입니다.
▲선생님의 저서가 굉장히 많으시다고 알고 있는데…몇권 정도며 일관된 맥은 무엇인지요?
책 자랑하는 일은 바보같은 일인데…저서와 번역서 등 모두 합하면 약 108권 정도 될까요? 정확히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유아기교육과 자녀교육 관련된 것이 약 30여권 정도, 대학 교과서류도 30여권, 에세이류가 10여권, 전문서적 20여권, 그리고 교양서적들도 있지요. 전문서적이나 교과서류는 주로 발달심리학에 관련된 것들입니다. 그중 피아제에 관련된 책이 4권이고 창의성과 관련된 책이 6권 정도 됩니다. 제 관심분야는 이런 것들을 통해 볼 때 발달 중에서도 발달단계적으로는 영유아기, 영역으로는 인지발달과 창의성에 주로 집중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 - 이은경 본원상담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