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상담소식 11월호

얼마 전 영국신문에서 부모들이 자식들 숙제를 해준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적지 않았다는 조사결과 보도를 읽었다. 영국 부모들은 한국 부모에 비해 자식과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어서 이 사실은 나에게 좀 의아하게 느껴졌지만, 한편으로는 부모 마음은 어디나 마찬가지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기는 이곳 중산층 부모들도 아이들을 차로 통학시키는 시간을 중심으로 일과를 짜고, 좋은 학교를 찾아보고, 좀 여유가 있는 가정은 다른 지출을 줄여서라도, 학비가 비싼 사립기숙학교에 보내는 등 자녀교육이 가정생활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좋은 학

원 찾으러 다니는 한국 가정이나 마찬가지다.
한국에서의 이민 열풍의 한 이유가 자식교육 문제 때문이라고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시장에서 속아 물건을 잘못 산 것은 그냥 지나쳐 버리고 하루 운이 없었다고 넘어갈 수 있어도, 자식이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침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이민을 갈만큼 한국 부모의 심장을 건드리는 일인가 보다. 그것은 사람이 물건이 아닌 때문이리라. 아이들은 참으로 예민하다. 우리 집은 아들은 한국에 살고 나는 영국에 있는데 아들이 한번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엄마가 전화를 먼저 끊어서 상처 받았다고. 나는 “엄마가 바빠 전화 먼저 끊은 걸 가지고 사내 녀석이…”하면서 머리를 한대 쥐어박는 방식으로 대응하지는 않았다. 정말 상처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래 내가 그런 점이 있지. 아마 바쁜 신문사 생활에서 오래 개인적인 전화를 다정하게 하지 않는 직업병(?) 을 얻은 것인지도 모르겠고 워낙 전화비가 비싼 런던에서 살다 보니…다음부터는 그러지 않도록 노력할게” 라는 변명도 하지 못했다.
나부터도 그렇고, 한국에서는 어른들이 왜 좀 다정하게, 따뜻하게 아이들을 대하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은 말 한 마디, 사소한 몸짓 하나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일전에 한 아이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아이는 선생님으로부터 "야, 이 X아!”소리와 함께 머리를 출석부로 맞은 후 충격을 받아 영국으로 되돌아왔다고 한다.
영국 교육의 한 가지 좋은 점을 말하라면, 학생을 인격체로 대하는 점이다. 어쩌면 인격체로 대해야 한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오히려 선생님들이 안돼 보일 정도이다. 교실에서 체벌금지는 물론, 아이가 잘못해도 노려보는 것조차도 안 된다. 학생이 마음에 상처를 받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영국 일상생활의 매우 중요한 규칙으로 자리 잡고 있다. 언성을 높이는 일이 별로 없다.
어른이 되면 아이들도 안다.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출석부로 머리 맞는 일 보다 더한 일도 일어난다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른들이 미리 이를 나서서 보여주고 강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교육은 그래서 우리의 희망이 아닌가? 아이들이 관련된 일은 조금 다른 잣대로 정성과 진심을 기울여 처리해야 하며, 아이들에게 상처 주는 일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아이들은 아직 그것을 견뎌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