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자동차와 같은 속도로 사람이 달리면서 자동차가 온다고 소리치는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웃음이 나오시지요?
1865년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이름으로 선포된 세계최초의 도로교통법 적기조례(red flag act)는 바로 그런 법이었습니다. 적기조례는 자동차가 도심에서는 시속 3.2㎞,시외에선 6.4㎞ 이상의 속도를 내지 못하게 하고 붉은 깃발을 든 깃발수가 자동차 앞에서 걷거나 말을 타고 달리면서 자동차가 온다는 것을 행인들에게 경고하도록 했습니다.
당시 자동차는 최고 시속 40㎞ 까지 달릴 수 있었지만 자동차의 속도와 운송능력을 마차 수준으로 얽어 맨 이런 우스꽝스러운 법으로 인해 영국의 자동차 산업은 위축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법이 제정된 것은 자동차 이전의 대중 교통 수단이었던 객마차와 기차 운영업자들이 자동차 사고에 놀란 시민들과 함께 의회에 압력을 넣은 결과였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의 의식 수준도 이 적기조례와 같은 것은 아닌지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듯 싶습니다. 세상은 눈부신 속도로 변하고 있는데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 합니다. 이른바 새로운 소식을 전하는 일을 하는 신문사에 근무하는 제 자신도 그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기 어려움을 느끼곤 합니다.
지난해 연말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도 그랬습니다. 출근길 남산 소월로(순환도로)에서 자동차가 눈길에 미끄러져 4중 충돌사고가 일어났는데 그 중 한 자동차에서 내린 20대 여성은 사고 지점이 어느 구청 관할인지 궁금해 하더니 대뜸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위험한 길에 아직까지 염화칼슘을 뿌리지도 않았다니 인터넷에 올려야겠네."
21세기 한국을 이끌 첫 지도자를 뽑는 대통령 선거가 있기 일주일 전인 지난해 12월12일 대한매일에 제가 쓴 칼럼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인터넷으로 인해 한국의 정치 지형이 바뀌고 있음에도 우리 사회,특히 주류 계층과 기존 매체의 의식과 법과 제도는 아직 그 변화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이렇게 무언가 아는 척 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 여성의 말에 놀랐습니다. 저는 다만 느끼고 생각했을 뿐이지만 그 여성은 즉각 행동에 옮기는 젊은이였으니까요.
우리 사회의 주류와 비주류가 바뀐 지난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인터넷 혁명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만 인터넷은 이제 우리 사회를 급속히 바꾸어 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그 변화의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인터넷의 바다에서 즐겁게 헤엄치는 젊은 세대와 달리 기성세대는 이같은 현실에 소외감과 불안함을 느낍니다. 익명성으로 인한 언어폭력등 부정적인 측면 만을 보고 인터넷을 외면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적기조례와 다를 바 없는 태도인 듯 합니다. 인터넷의 바다에 뛰어들어 네티즌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생각을 나누고 그들의 문화를 몸에 익히면서 잘 활용하지 않는 한 청소년을 이해하기는 어려울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