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에 읽은 책 한 권은 한 사람의 미래가 되기도 한다. 롤 모델을 찾기 위해 위인전을 읽고, 지식을 쌓기 위해 과학, 역사 서적 등을 읽으며, 공감이 가는 한 편의 창작 동화로 가슴 뭉클한 감동과 깨달음을 얻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푸르른 오월, 이번 달에는 어린이날을 맞아 최향숙 동화 작가를 만나보았다.

작가님께서는 주로 과학, 역사 도서를 집필하셨다고 알고 있는데요, 지금까지 출판하신 책들 소개 좀 부탁드려요. 말씀하신 대로 저는 주로 어린이들의 학습과 관련된 책을 많이 썼습니다. 과학, 사회, 역사 분야가 제 주된 관심사에요. 그 가운데 몇 가지를 말씀드리면, <우글와글 미생물을 찾아봐(대교출판)> <한권으로 읽는 한국사(대교출판)> <겁쟁이 공룡 티라노사우루스(삼성출판사)> <왜 호기심 백과(삼성출판사)> 등이 있습니다.


한 권의 책을 출판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책이 출판되기까지는 크게 기획, 집필, 편집, 인쇄 이렇게 네 단계를 거쳐요. 기획이란 어떤 책을 어떻게 만들까를 결정하는 단계에요. 한 마디로 책의 컨셉과 출판 계획을 수립하는 단계지요. 역사책을 만들 것인지, 과학책을 만들 것인지, 과학책으로 결정했다면 어떤 분야, 어떤 독자를 대상으로 만들 것인지 등등 전체적인 계획을 잡는 거에요. 이런 사항이 결정되면 집필에 들어갑니다. 작가 스스로가 기획을 했다면 작가가 집필을 하겠죠? 하지만 기획을 출판사가 했다면, 출판사에서 작가를 섭외해서 진행합니다. 그 다음은 편집 단계에요. 편집자는 원고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삽화가를 섭외해 원고에 맞는 삽화를 의뢰합니다. 삽화 작업이 끝나면 원고와 삽화를 독자들이 보기 쉽게 배열하고 구성하지요. 이때 사진 자료 등도 함께 활용합니다. 편집이 끝나면 인쇄소로 필름이나 데이터를 넘겨서 인쇄를 해요. 드디어 책이 출판되는 것이죠.


보통 창작 동화는 국문과를 전공하신 분들이 많이 쓰시는 것 같고, 과학이나 역사 도서는 해당 과목 전공 선생님들이 쓰시는 것 같은데, 동화 작가가 되기에 유리한 전공이 있을까요? 동화 작가 가운데는 문예창작학과에서 공부하신 분들도 많아요. 국어국문학을 전공하신 분도 있고요. 아무래도 대학에서 배우는 것이 글쓰기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부분이 많으니까, 동화를 쓰기에도 유리하겠죠? 과학이나 역사 분야를 공부했다면, 과학과 역사 분야의 도서를 쓰는 데 도움이 될 거에요. 그만큼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풍부할 테니까요.


작가님은 어떤 계기로 동화 작가를 하시게 되었나요? 친구가 동화를 쓰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한 출판사의 기획실장님과 만나는 자리를 만들었는데, 우연치 않게 저도 따라가게 되었지요. 기획실장님과 한 동안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저더러 한 번 써 보라고 하시더라고요. 이야기를 하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고. 그 말씀에 도전하게 되었는데, 정말 제가 맞는 직업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동화 작가는 어떤 자질을 갖추어야 할까요? 아무래도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어야 하니까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면 좋을 것 같아요. 어떤 분야든,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좋지요. 그런 의미에서 동화 작가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을 긍정적인 사고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동화 작가의 가장 큰 자질은 뭘까. 사람마다, 작가마다 생각이 다를 거에요. 제가 생각하는 동화 작가의 가장 큰 자질은 ‘자기만의 세계를 갖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동화도 결국 작가의 이야기이거든요. 동화 작가는 교육자가 아니라 이야기하는 사람, 자기의 세계를 이야기하는 사람이에요. 이야기를 하는 대상이 ‘어린이’란 점이 다른 책과 다를 뿐이지요. 자기만의 세계가 없는 사람은 남과 똑같은 이야기밖에 할 수 없어요. 그런 이야기가 어떻게 책으로 출판되겠어요? 사실 이건 동화뿐만 아니라 모든 문화와 예술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 가져야 하는 자질이기도 하지요.


동화 작가로서 느끼는 보람도 크시죠? 원고를 마감할 때, 정말 뿌듯해요. 특히 새벽에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를 딱 찍고, 손깍지를 낀 채 기지개를 쫙 펴면 손가락이 얇아진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럼 그때 ‘내가 정말 열심히 썼구나(키보드를 두드렸구나!)! 하는 생각이 스치면서 쓱 웃음이 나오죠. 그 때가 책을 쓰면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에요.


반대로 어려움도 있을 것 같은데요. 고충이 있다면 어떤 점일까요? 한계를 느낄 때가 있어요. 앞에서 동화 작가의 가장 큰 자질은 ‘자기만의 세계를 갖고 있는 것’이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나는 정말 나만의 세계를 갖고 있나?’ 하는 자문이 들 때가 많죠. 또 실력의 한계를 느낄 때가 있어요. 머릿속 생각을 글로 구현해지 못할 때... 이런 때는 정말 속이 많이 상해요.


한 권의 책은 아이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하잖아요. 글을 쓰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에요. 처음 책을 쓸 때는 그저 신이 났어요. 내가 쓴 글이 책이 되어 서점에 꽂혀 있는 것만으로도 뿌듯한 거에요. 그런데 몇 년쯤 지나자 이런 생각이 드는 거에요. 내가 쓴 글이 저렇게 책으로 만들어져 나올 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활자화’ 된다는 것의 무게를 느낀 거죠. 지금은 달라졌고 미래는 더 달라질 거라고 해도, ‘활자화’ 된 것은 오래도록 기록으로 남는 거잖아요. 내가 죽은 뒤에 도요. 물론 출판사에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책을 냈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그건 ‘상품으로서의 가치’뿐일 수 있어요. 출판사도 하나의 기업이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출판사뿐만 아니라 내 스스로 ‘책으로 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기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원고를 쓸 때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하는 자문을 자꾸 하는 거에요.


독서 인구가 줄고, 출판 시장이 축소되고는 있지만 한국의 높은 교육열을 반영하는 동화책 출판 시장은 좀 다를 것 같은데, 동화작가란 직업의 전망은 어떨까요? 한국의 교육열 덕에 우리나라의 동화책 출판 시장의 전망도 좋을 것이다... 이 말이 언제까지나 유효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출산율 저하에 따른 어린이 인구 감소, 지나친 입시 위주 교육으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들로 어린이 대상의 출판 시장도 점점 어려워질 것 같거든요. 하지만 이런 문제는 사실 출판 시장, 어린이 대상의 출판 시장만의 것은 아니지요. 어떤 분야든 앞으로는 더 어려워지지, 쉬워지는 분야는 없을 거에요. 따라서 저는 어떤 분야가 전망이 있다는 말보다는 어떤 분야에서든 시대에 흐름에 맞는 내용을 가진 사람은 전망이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동화 작가라는 분야로만 본다면, 어린이에게 필요한 컨텐츠를 창작해 낼 수 있는 있는 사람이라면, 전망이 어두울 수 없지요.


마지막으로 동화 작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한마디 조언 부탁드려요. 첫 번째로 저는 동화를 ‘교육’의 관점으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보면 ‘어린이는 순수해야 해.’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줘야 해’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기 쉽거든요. 그런 생각을 자꾸 하게 되면 그 안에 갇히게 되고, 그 안에 갇히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는 데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어요. 두 번째로 ‘한국’이라는 공간에 머무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그야말로 ‘글로벌’ 시대에요.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책이 중국, 대만과 같은 아시아는 물론 유럽, 미국으로도 번역되어 출판되는 시대지요. 그러니 어떤 책을 쓸까를 고민할 때, 우리나라만 생각하지 말고 더 넓은 세계를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책”이라는 틀에만 집착하지 않기를 바라요. 100년 전만 해도 “책”은 지식과 정보, 문학을 전달하는 거의 유일한 매체였어요. 하지만 세상이 변화하고 발전하면서 매체도 발전했어요. 따라서 더 이상 ‘동화’가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서만 만들어질 이유가 없어요! 이미 전자책이 출판되고 있고, 앞으로 어떤 매체가 새롭게 등장할지 몰라요. 그런 매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그에 대한 고민을 놓치지 않는 것도 중요할 것 같아요.


최향숙
대학에서 문헌정보학을 전공했지만 학교 공부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철학, 역사, 과학 등의 책읽기에만 열중했습니다. 그리고 1996년부터 우연치 않게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역사, 과학 분야의 책을 주로 집필하고, 그 결과를 단행본은 물론 시리즈, 어린이 전집 등을 통해 출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