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때로 삶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느끼곤 합니다. 하루하루의 계획과 행동, 인간관계까지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지에 앞서 가끔은 내가 정말 어떻게 하고 싶은 건지 모를 때도 많지요. 청소년뿐 아니라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정말 자신의 의지와 감정대로 자유롭게 살아가느냐는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할 것입니다. 영화 <우리가 꿈꾸는 기적: 인빅터스>에서는 이런 질문에 온 삶으로 답하는 넬슨 만델라라는 인물을 통해 그 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를 함께 살펴보며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방법을 찾아볼까요?

넬슨 만델라는 과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악명 높은 흑인 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 싸웠던 흑인 인권운동가입니다. 흑인의 권리를 주장했다는 이유로 무려 27년간 6개월 간 독방에 수감되기도 했지만, 끝까지 저항 의지를 꺾지 않고 결국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현대사의 신화 같은 인물이지요. 영화의 제목 ‘인빅터스Invictus’는 19세기 후반 영국의 시인 윌리엄스 에네스트 헨리가 쓴 시의 제목이기도 한데, ‘정복되지 않은 자들’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입니다. 시 「인빅터스」는 그 어떤 칠흑 같은 암흑과 내려치는 위험 속에서도 스스로 자신의 운명의 주인이고 영혼의 선장임을 깨닫고 정복당하지 않는 영혼으로 남아 있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시를 만델라는 고통스러운 수감생활을 견디기 위해 수없이 읽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제목이 말해주듯, 이 영화는 넬슨 만델라에 대한, 넬슨 만델라를 위한 영화입니다. 그러나 중심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그의 생애나 저항이 아니라 럭비팀 스프링복스지요. 백인들의 스포츠로 여겨져 팀원 중 흑인은 단 한 명뿐인 데다, 유니폼마저 백인우월주의를 의미하는 바람에 이미 흑인들 사이에선 공공의 적과 같았습니다.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자 스프링복스 팀을 없애라는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지요. 그러나 넬슨 만델라는 백인들에게 복수해야 한다는 이들을 설득해 팀을 그대로 유지시킵니다. 그리고 스프링복스팀이 남아공 대표로 출전하는 럭비 월드컵에서 우승하면 분열된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스포츠를 통해 남아공의 위대함과 가능성을 보여주고, 이를 통해 인종갈등에 따른 사회적·정치적 위기를 극복하려는 것입니다.

실제로 스포츠가 정치적인 의도로 사용된 사례는 매우 많습니다. 팀을 응원하면서 상상의 공동체였던 국가가 구체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국가라는 대상에 개인의 감정을 이입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스포츠를 통한 통합은 일시적이라는 한계를 지니곤 하지요. 스포츠는 축제와 같아서 쉽게 모든 경계를 허무는 특성을 가졌지만 그 순간이 끝나고 나면 돌아온 현실에는 여전히 갈등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한순간의 기적으로 모든 갈등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한 기대겠지요. 하지만 넬슨 만델라는 뛰어난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하여 이를 이뤄냅니다. 심지어 '백인의 스포츠'라 불리는 럭비를 통해 말이지요. 이것은 매우 놀라운 결단인데, 흑인을 억압하고 자신을 27년간 가두었던 백인을 용서하고 그들의 스포츠까지 좋아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백인에 대한 미움과 원망을 버리고 용서하는 것은 그들에게 굴종하거나 회유되는 것보다 극복하기 어려웠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관용과 사랑의 정신이야말로 그가 진정한 삶의 주인임을 증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만델라는 감옥에서부터 백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공부하고 또 적극적으로 대화하면서 그들을 용서하고 포용해 마침내 분노와 증오로부터 자유로운, 온전한 자신의 삶을 찾은 것입니다.

스프링복스팀의 주장 프랑소와는 그런 만델라의 뜻을 잘 이해하고 따라와 준 또 한 명의 주인공입니다. 만델라가 꿈꿨던 기적을 이루기 위해서 럭비월드컵의 우승은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에 만델라는 팀에게 조언과 지원을 아끼지 않지만, 사실 처음에 스프링복스팀은 의지도, 실력도 그저 그런 팀이었습니다. 주장 프랑소와도 전형적인 만델라에게 나라를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백인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었고요. 하지만 만델라를 만난 프랑소와는 그가 백인들을 완전히 용서하고 함께 나라를 만들어가려는 의지를 가졌음을 확인합니다. 그래서 단순히 럭비를 잘 하는 팀을 만드는 것을 넘어 만델라가 어떻게 백인들을 용서했을지 이해하고자 고민하기 시작하지요. 이후 스프링복스팀은 훈련하는 과정에서 빈민가의 흑인 아이들과 함께 스포츠를 하거나, 만델라가 갇혔던 감옥을 방문하는 등 팀원들 내면에 존재하던 불만, 두려움, 멸시 같은 감정을 치유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곧 승리에 대한 동기와 용기를 북돋는 일이기도 했지요.

결국 영화 마지막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었던 화해의 풍경들, 백인 주인과 흑인 가정부가 더 친밀한 관계가 되고, 흑인 아이와 백인 경찰관이 서로 얼싸안는 것은 단순히 우승컵의 기적은 아닙니다. 그 이전부터 이 사회를 조금씩 바꾸고자 했던 개인들의 노력과 서로를 이해하려는 의지가 모여 결코 섞일 수도, 함께 살 수도 없을 것 같았던 이들의 마음을 열게 한 것입니다. 실제로 남아공은 만델라 대통령 이후 많은 부분에서 인종차별 문제를 개선했고, 민주주의의 발전도 이루었습니다. 한 사람의 열정과 꿈이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주체할 수 없는 미움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사랑과 관용으로 자신의 삶에 주인이 되도록 이끈 것입니다. 영화 속에서 만델라는 프랑소와를 만나 ‘리더는 구성원들을 고무시키고 열정적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며 「인빅터스」의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오. 내 영혼의 선장이니. I am the master of my fate. I am the captain of my soul.’라는 구절을 읊어줍니다. 그 말은 어쩌면 프랑소와뿐 아니라 영화를 보는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그들과 같이 거대한 슬픔은 아니겠지만 우리에게도 모두 나름의 고민과 분노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에 지지 않고 내면의 진정한 자유를 찾고 내 운명의 주인, 영혼의 선장에 이르는 길을 걷자고, 영화는 말을 건네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