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을 맞은 광운전자공고는 깊은 겨울잠을 자듯 고요하기만 하다. 정문에 전자로봇반 학생들의 수상을 기리는 현수막이 겨울바람을 맞으며 조용히 학교를 알리고 있다. 서울 성북역에 자리하고 있는 광운전자공고는 전자공학에 주역이라 할 수 있는 광운대학교와 마주하고 있는 학교로 광운대학교 전자정보대와 인덕대학교와의 교류를 활발히 진행해가고 있으며, 강북지역에서 유일하게 로봇관련학과를 보유하고 있는 등 전자교육의 요람으로 떠오르고 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장난을 치며 필자를 기다리던 전자로봇동아리 학생들, 8명의 남학생들과 김용규 선생님이 전자로봇반 교무실을 따듯한 기운으로 가득 채워놓아 후끈하기까지 하다. 부회장을 맡고 있는 영수는 연신 핸드폰을 확인하며 아직도 잠에 취해 오지 못한 부원들을 챙기는데 여념이 없다.
 
전자로봇에 대해 문외한인 필자가 긴장감에 ‘전자로봇이 무엇이냐’ 물었더니 1학년 학생들이 “저희도 몰라요”하고 대답해 한바탕 웃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가장 말빨(?)이 뛰어나다는 준태가 “저희는 로봇을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닌 만들어진 기존 제품 로봇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컴퓨터로 프로그램밍 시키는 작업을 하는 동아리”라고 설명하며 “현재 1학년을 주축으로 대회의 목적에 맞게 프로그램밍 하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작년 초에 창단된 동아리지만 로봇올림피아드의 수도권 대회부터 세계대회까지 약
 
30회에 이르는 높은 수상경력을 갖고 있으며 전자쪽으로는 서울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학교로 들어오고 싶어 하는 신입생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하지만 대회는 단체로 나가지 않고 개인별로 출전하게 되어있어요. 그래서 같은 동아리 내에서도 떨어진 사람도 있고 붙는 사람도 있죠”라고 말하는 영수. 그럼 경쟁심과 절망감이 심하지 않냐는 질문에 모두 고개를 젓는다. 1학년 성준이는 “개인적인 좌절은 있을지 몰라도 서로 상을 탈 수 있게 도와주고 또 그걸 서로 바라기 때문에 경쟁심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쑥스러운지 고개만 숙이고 있던 1학년 필욱이는 “성준이는 조용하고 꾸준히 노력하는 친구인데 작년에 뚜렷한 결과가 없어 안타까웠지만 그 노력이 2학년 때 결실을 맺을 거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우선 상을 타서 결과적으로 보람을 느끼고 상을 탈 때마다 나도 뭔가 이루었다는 자신감이 붙는다”는 1학년 정호는 평소에 잠만 자는 것 같은데 꼭 대회에 나가면 상을 타 친구들 사이에선 ‘운 좋은 놈’으로 불리고 있다. “내성적인 성격인데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친구들을 많이 사귀게 됐고, 시험에 관해 서로 정보를 나눌 수 있어 좋다”고 말하는 분위기 메이커 재곤이를 포함해 전자로봇반 부원들이 동아리를 통해 공통적으로 느끼는 장점은 ‘또래 친구들보다 앞서간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었다. 부회장 영수는 “남들이 잘 안하는 것, 또래는 물론이고 성인들도 하기 힘든 것을 우리가 한다는 사실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불만이 있기 마련, 정호는 “사실 상을 많이 타와도 몇몇 선생님들께서 올림피아드 상을 타려고 노력할 시간에 내신 성적을 올리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해주세요. 그럴 때마다 낙심되는게 사실이에요. 거기다 대회에 나갈 때에도 개인부담을 해야 하는데 이것도 어려운 부분 중 하나예요. 바람은 학교에서 동아리 활동을 적극 지원해 주었으면 하고 국가차원에서도 이 분야에 대해 장려하고 인정해 준다면 더욱 즐겁고 열심히 활동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부원들에 의하면 정부의 로봇산업육성정책이 아직 피부로 와 닿지 않아 안타깝다고 한다. 이에 김용규 선생님은 “대학입학 조건 중 올림피아드대회 상장이 차지하는 비율은 너무 적습니다. 내신성적을 올리는데 투자하는 것이 대학입시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이 현실이라서 선생님들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하지만 학생들에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대회에 출전하고 우승했던 것에 대해 분명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분위기가 사뭇 진지해졌다.

 
부회장 영수는 사람들의 편견에 대해 한마디 한다. “공고라고 해서 공부를 못해 온 학교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곤란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예요. 우린 인문계 학생에 비해 뒤처지지 않으며 로봇이라는 첨단분야에서 많은 상을 타고 노력하고 있는 학생들입니다.” 꿈에 대해 로봇 관련 분야로 대학진학을 생각하고 있는 전자로봇반 부원들. 그냥 책상에 앉아서가 아닌 한걸음한걸음 노력하고 인내하며 도전과 결과를 이룩하고 있는 전문가적인 이들의 모습은 공고에 대한 어떠한 편견도 무색하게 만든다.
 
학생들은 김용규 선생님을 “신세대라 저희를 잘 이해해 주시고 특히 재치만점”이라고 한 목소리를 낸다. “작년 초, 아무것도 없고 대내외적인 정보가 부족했던 가장 힘든 상황에서 첫 대회를 치르는데 학생들이 좋은 성적을 내 참 기뻤다”는 선생님은 “날 믿고 따라주는 학생들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현재 배운 것에 만족하지 말고 스스로 찾아 목표를 설정하고 인내와 열정으로 따라왔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김용규 선생님.
“대학교 로봇과를 비롯해 한국이 로봇분야에서 단연 최고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태연의 마음이 모든 전자로봇반 학생들의 마음일테다. 그래서 무뚝뚝하지만 그 속에 순수한 열정과 우정을 키우고 있는 전자로봇반 남자들은 ‘도전’이라는 이름으로 청소년기를 장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