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입니다. 가을을 맞아 멜랑콜리 센티멘털한 기분에 감성 한 스푼 더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편집자는 음악회를 찾았더랬죠. 바로 낭만주의의 대표적 음악가 드보르작의 탄생 180주년 연주회였습니다. 물론 연주회는 아주 좋았습니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흥겨운 무곡에서부터 생전 처음 듣는 집시의 노래까지 아주 다양한 곡이 연주되었습니다. 그런데 편집자의 마음에 남은 한 가지는 바로 ‘탄생’ 180주년 기념 연주회였다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작년은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이면서 동시에 차이코프스키의 탄생 180주년이어서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연주회가 열렸죠. 지난 2017년은 윤동주 시인의 탄생 100주년이어서 윤동주 전집이 재발간되기도 했었고요. 그런데 가만.... ‘탄생 00주년’, 뭔가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나요? 보통의 우리들은 죽은 후에는 기일을 챙기지, 생일을 챙기지는 않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해마다 명절과 제사로써 죽은 이들을 기립니다. 생일이 시작이라면 기일은 끝이겠죠. 한 인간이 나서 살고 죽기까지 더 많은 의미는 살아있을 때 만들어졌을 텐데도 죽고 나면 끝만 남는 건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생(生)은 대체로 축하와 축복과 함께하고 몰(沒)은 슬픔과 위로를 동반하기 마련인데도 사후에는 죽음만을 기림의 날로 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부터 왜 우리에게는 이런 습속이 생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이런 위대한 예술가들은 죽은 후에도 생일을 챙겨주는 후손들이 있는 행복한 망자(亡子)들인 것만은 확실하네요. 깊어가는 가을, 탄생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짧게 드린 김에 가을에 어울리는 드보르작의 명곡을 한번 들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편집자는 슬라브 무곡 Op.72 No.2 추천해 드립니다._KYC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