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장마, 무서울 만큼 쏟아지던 폭우 끝에 폭염이 시작됐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열을 식혀보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어쩔 수 없다. 아래 소개하는 책을 읽으며 ‘나는 시원하다.... 나는 덥지않다...’ 정신승리 해보자.
< 글 히가시노 게이고 | 옮긴이 양윤옥 | 소미미디어 >
추리소설 마니아라면 모를 수 없는 이름, 추리소설을 즐기지 않아도 한 번쯤 들어봤을 일본 추리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스노보드 도전기다. 소문난 겨울스포츠 덕후로 알려진 작가의 새하얀 설산(雪山)에 대한 묘사만으로도 충분히 열기가 식는 느낌이다. 혹시라도 스노보드를 시작하려고 입문서를 찾는 중이었다면 어쩌면 유튜브를 검색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이 책의 포인트는, 무언가 시작하기에는 늦었다고 생각되는 ‘40대 중년 아저씨’의 스노보드 도전기를 무려 히가시노 게이고의 ‘글빨’로 들어볼 수 있다는 데 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에는 한도라는 게 있다. 아무리 몇 살부터 시작해도 상관없다지만, 마흔을 코앞에 둔 나는 아무래도 어려울 것이라고 지레 포기해버렸다. ‘꼭 해보고 싶다’라는 마음은 어느새 ‘꼭 해보고 싶었는데’로 변해갔다."
< 글 로런스 블록 |옮긴이 이은선 |문학동네 >
코로나로 인해 전시·공연 관람이 어렵게 되자 여러 가지 비대면 관람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최근 국내 최대 규모 국립현대미술관은 유튜브 채널에 큐레이터가 직접 설명해주는 전시 투어 영상을 게시하는 등 미술 분야에서도 다양한 온라인 서비스를 찾아볼 수 있다. 멀리서만 보던 그림을 확대해서도 볼 수 있고 천천히 돌아보려면 몇 시간씩 걸리던 작품들을 더 편하게 짧은 시간에 둘러볼 수 있다는 호평도 쏟아지고 있지만 문제는... 그 아무리 ‘띵작’이라는 작품도 사실 잘 이해가 안 되고, 심지어 작품해설을 봐도 잘 모르겠는 아직은 순진무구한(?) 우리의 눈!
그렇다면 작품 자체에 대한 주입식 해설보다는 ‘위대한 예술가들의 작품에서 태어난 매혹적인 이야기들’을 읽어보자. 이른바 예알못·그알못이라도 모를 수 없는 고흐의 작품에서부터 광고 같은 데서 본 것도 같은 익숙한 초현실주의 작품까지, 선사시대 동굴벽화에서부터 아직도 진행 중인 현대미술까지, 작가와 장르에 대한 선입견 없이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담은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모두 17편의 단편에 각각 영감을 준 작품이 짝을 이루고 있고, 각 이야기의 첫 페이지에 해당 작품의 사진을 실어놓았다. 일견 두꺼운 책이 부담스러워 보여도 어려 편의 단편을 묶어 놓은 책인 덕에, 닭꼬치에서 닭고기, 떡, 채소 등속을 하나씩 빼먹듯 한 편씩 한 편씩 천천히 읽어도 된다는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작품의 탄생 비화나 화가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소문,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 배경, 혹은 작품을 맞닥뜨렸을 때 작가에게 떠오른 직관적인 상상력 등이 모두 이야기의 소재가 되어, 때로는 어둡고 기묘한 느낌을 때로는 예상 밖의 반전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덧붙여진 작품인 까닭에 그 동안 모르면서 아는 척 감상했던 작품들과는 달리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더불어 작품의 이면에 담긴 의미가 새롭게 다가와서 이전까지의 예술작품 감상과는 다른 새로운 재미를 얻을 수 있다. 만약 이 한권의 책을 성공적으로 완독한 독자라면 최소한 17개의 작품에 대해서는 어디 가서 알은 체 좀 해도 되지 않을까.
< 글·그림 안녕달 | 창비 >
세 번째 소개드릴 책은 그림책 <할머니의 여름휴가>이다.
KYCI 웹진 독자님들, 표지 보이시나요? 보기만 해도 가슴이 좀 뚫리지 않나요?
흔히 생각나는 여름휴가철 바닷가의 풍경이라면 줄지어 꽂힌 파라솔, 바글바글한 피서객, 물반 사람반 바닷물에는 튜브랑 공이랑 사람이 뒤섞여 동동동...... 인데, 이 그림책의 바닷가는 이렇게 ‘휴가스럽다’. 뛰어가는 강아지를 마치 조심하라고 소리치듯 따라가는 할머니, 그리고 그녀의 꽃무늬 원피스수영복과 손에 들린 반통 수박에 이미 더위는 항복선언문 작성 중이다.
『할머니의 여름휴가』는 재기발랄한 상상력으로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안녕달 작가의 두 번째 창작그림책이다. 어느 여름날, 홀로 사는 할머니에게 손자가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고장 난 선풍기와 텔레비전, 작은 소파 등이 겨우 자리한 좁은 집에 혼자 사는 할머니에게 여름휴가를 다녀온 손자는 소라껍데기를 선물한다. 이 소라껍데기를 통해 상상력 가득한 할머니의 여름휴가가 시작된다.
따뜻하면서도 재치 있는 그림을 그려온 작가의 그림을 한 장 한 장 넘기다보면, 이렇게 낙낙한 휴가를 즐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동시에 이 더위에도 휴가 엄두를 못내는 이웃들, 외로운 할머니에 대한 손주의 따뜻한 마음,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가슴 한켠에 숨겨놓았을 모래밭을 뛰놀고 싶다는 마음 같은 것도 슬쩍슬쩍 보인다. 이 책을 즐기기 위한 유일하면서도 중요한 조건은 그림책은 아이들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에는 땀을 한 바가지씩 흘려도 더운 줄을 모르고 밖에서 뛰어놀았다. 역대급 더위라는 이번 여름 폭염에는 더위도 잊게 하는 어린 시절의 마음을 그림책으로 되찾아 볼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_KYC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