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이야기
산산조각난 우리집과 아빠가 싫어요.

안녕하세요. 저는 중3 여학생입니다. 전 하루하루 살기가 너무 힘이 들어요. 엄마와 아빠가 서로 별거 생활을 하고 계세요. 저희 집은 그리 넉넉하지도 못하고, 또 부모님 학벌이 좋은 것도 아니에요. 별거 생활을 하시게 된 이유는, 어머니가 먼저 나가셨으니까, 어머니의 죄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아버지는 너무 무기력하고, 성격도 괴팍하시고, 일 처리도 잘 하시지 못하세요. 옛날 오빠가 도벽이 있었을 때, 큰 일이 하나 있었는데 아빠는 벌벌 떠시기만 할 뿐, 아무런 해결을 보지 못하시고 어머니가 나서서 해결을 하셨습니다. 아빠는 겁쟁이예요.

이번에 오빠가 오토바이를 타다가 어깨가 부러져서 입원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도 마찬가지로 벌벌 떨기만 하시며 자꾸만 제게 짜증을 내시더군요.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그런 정도예요. 그래서 어머니가 그런 아버지 때문에 힘들어서 집을 나가신 것 같아요.

전 지금 아빠와 함께 살고 있어요. 아빠는 열심히 사시려고 하시죠.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이혼하자고 자꾸 요구하세요. 어머니가 너무나도 불쌍해서 이혼하는 것이 속 편하다고 생각하지만 두렵습니다.

전 앞으로 결혼 따위는 하지 않을 겁니다. 아버지의 행동을 저주합니다. 이렇게 컴퓨터를 하는 것은 쉽지 않아요. 저희 아버진 귀가 무진장 밝거든요. 제가 전원을 켜기만 하면 달려와 제발 컴퓨터 좀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럴 때 마다 전 아버지를 죽이고만 싶어요. 그렇지만 아버진 제게 용돈을 주시고 학교도 다니게 해 주시니까, 아버지가 죽고 나면 제겐 물주가 사라져서 그건 안 되죠.

아빠에 대한 사랑 따위는 없어요. 있다면 그건 동정이죠. 그리고 돈에 대한 감사... 모르겠어요... 더 무얼 말씀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무서워요... 아빠 얼굴 보는 것도 싫고, 가끔은 아빠가 너무 불쌍해 보이기도 하고... 제가 사춘기라는 것은 아는데... 힘들어요... 도와주세요.

부모님이 떨어져 지내고, 00님은 아버지와 살고 있군요. 하지만 무능력한 아빠가 00님은 무척이나 싫은 것 같네요. 그래서 아빠를 저주하기도 하고, 아빠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까지도 하는 것을 보고, 저는 마음이 아팠답니다. 00님이 말했듯이 사춘기는 부모로부터의 독립도 시도하게 되고, 그 동안 위대하게만 보였던 부모님의 실상을 제대로 보게 되어, 경멸도 하지만 한편은 내 부모님의 가련한 모습에 동정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런 청소년기의 보편적인 모습이 00님에게도 나타나고 있는 것 같네요. 그렇기 때문에, 00님이 이상한 것도 아니고 나쁜 여학생도 아닙니다.

00님이 아버지에 대해서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아버지인들 그렇게 하고 싶으셨겠습니까? 00님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못난 사람이었다면 어찌 어머니인들 평생의 반려자로 생각하고, 결혼하고, 사랑하는 아이들을 낳았겠습니까? 사랑할 당시엔 그렇게 믿음직한 분이었지만, 세파에 시달리고 세월이 흐르다보니 그렇게 변한 것인지도 모르지요. 이 말이 현재 아버지의 처신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00님의 얘기를 보면, 아버지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사라질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오빠의 방황과 어머니의 가출도 어떻게 보면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일어난 일일지도 모릅니다. 00님의 글 속에서, 이런 힘든 모습이 짙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아버지를 그렇게 미워해서는 안될 것 같네요.

00님 개인적으로도 아버지에 대한 연민이 있듯이, 아버지 역시 외롭고 가엾은 분인지도 모릅니다. 겉으로는 00님에게 화를 내고 괴롭히지만, 아버지 가슴은 찢어지는지 모릅니다. 사람이란 인정해주고 칭찬해주면, 정말 못하던 사람도 잘 할 수 있고, 그렇게 격려와 칭찬 속에 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이랍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능력이지요. 그러나 잘못을 비웃고 능력을 무시하면, 사람은 그 어느 누구도 자기 실력 발휘가 어렵습니다. 아버지도 그런 상태인지 모르지요.

딸은 보편적으로 엄마 편에 서는 쪽이 많습니다. 이런 이유로 00님도 혹시 아버지에게 편견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사람이 어떤 사람과 나쁘게 되었다면, 한 쪽만 일방적으로 나쁜 것은 아닙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양쪽 다 문제가 있는 것이지요. 00님이 잠시 주위만 돌아봐도, 금방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요. 예를 들어, 00님은 아버지를 얼마나 이해하려 노력해 보았나요. 아버지의 아픔을, 외로움을 이해하려 얼마나 노력해 봤을까요.

그리고 엄마와 아빠의 사이를 좋게 하기 위해, 어느 정도 노력해 봤을까요. 엄마, 아빠의 싸움에 원망하고 탓했을지는 몰라도 두 분의 깊은 고뇌를 이해하고 풀어 주려고 노력했던 적이 있었는지 한 번 생각해 보기를 바라요.

00님은 어머니 아버지 정도의 어른이면 모든 자기의 감정을 다 잘 다스릴 수 있고 절제할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큰 착각입니다. 엄마도 아빠도 00님같이 똑같이 외롭고 힘든, 그런 가엾은 인간일 뿐이랍니다. 다만 나이가 들어 겉모습만 다를 뿐, 우리와 똑같이 이룰 수 없는 욕망과 고뇌에 괴로워하고 있는 연약한 인간일 뿐이지요. 따라서 이제 청소년기 중반에 들어가는 00님은, 아버지를 미워하고 저주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아버지의 깊은 고뇌를 조금만이라도 이해해 보면 어떨까요.

그리고 자신의 모습이 스스로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잘 생각해 보길 바라요. 언젠가는 부모의 그늘을 떠나게 될 텐데 그때를 위해 자신을 위해 노력하세요. 주변을 바꾸는 것보다 자신을 바꾸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점을 잊지 마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