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부잣집 가정에는 아버지, 어머니, 예쁜 딸, 그리고 가정일을 돌보는 가정부 아주머니가 함께 살고 있었다. 부모님이 안계시던 어느 날, 사랑스러운 딸은 아버지가 가장 아끼던 볼펜을 가지고 놀다가 망가뜨렸다. 가정부는 그 광경을 목격했고, 자신의 말만 잘 들으면 아버지에게는 비밀로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 때부터 가정부 아주머니는 딸의 약점을 빌미로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딸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가정부 아주머니에게 시달림을 당하던 딸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아버지에게 고백하기로 마음먹었다. 엄청나게 혼이 날 줄 알았던 볼펜 사건은 의외로 아버지가 껄껄껄 웃으시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그 사실을 모르던 가정부 아주머니는 또 딸을 괴롭히려다가, 이미 고백하고 용서받은 딸의 당당함에 꼬리를 내리게 되었다.

어릴 적 교회에서 자주 듣던 ‘죄’와 ‘용서’에 관한 설교의 예화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약점이 있고, 살다 보면 잘못을 저지르기도 한다. ‘잘못을 저지름’은 누구에게나 있는 일이다. 문제는 그러한 ‘사건’을 어떻게 해결하느냐다. 많은 사람들이 가슴 속에 묻어둔 자신만의 잘못 때문에 고민하고, 후회하고, 부끄러워하며 자신감을 잃어버린 채 살아간다.

너새니엘 호선의 대표작 『주홍글자』는 자신이 저지른 실수에 대한 태도가 어떠한가에 따라 삶이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 작품이다. 사랑 없는 결혼을 했던 헤스터 프린은 영국의 식민지 시절 남편보다 먼저 보스턴에 도착한다. 남편은 예정된 때가 지났지만 나타나지 않았고, 그 사이 헤스터 프린은 한 남자와 사랑하여 예쁜 딸아이를 낳았다. 사생아를 낳은 그녀는 간통죄로 평생 가슴에 ‘A’를 달고 사는 벌을 받는다.

그렇다면 아이의 아버지는 어디에 있는가? 그녀는 사람들의 추궁에도 아이 아버지의 존재를 알리지 않는다. 아이 아버지는 마을에서 가장 존경받는 젊은 목사였기 때문이다. 목사는 남들은 모르는 자신만의 죄로 인해 시름시름 앓으며 건강이 악화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명성은 더욱 더 높아진다. 그럴수록 그의 죄책감도 점점 커가지만, 그는 결코 자신의 죄를 고백할 수 없다. 죄는 잃을 것이 많을수록 고백하기 어려운 법이니 말이다.

처음에 헤스터 프린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그녀뿐만 아니라 그녀의 아이까지도 사람들은 색안경을 끼고 봤다. 하지만 진실하게 참회한 그녀는 자신에 잘못에 대한 모든 대가를 담담히 받아들였고, 7년간 지속된 반듯하고 애정 어린 그녀의 행동들은 사람들에게서 ‘A’의 의미를 잊혀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주홍글자는 그녀의 직업을 상징했다. 그녀가 남을 돕는 힘이 어찌나 놀라웠던지, 즉 어찌나 실천력이 크고 어찌나 동정심이 강했던지 많은 사람들이 주홍글자 A를 원래의 뜻대로 해석하려 들지 않았다. 그들은 그것이 능력있음(Able)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헤스터 프린은 한 여성의 것이라기엔 참으로 강인한 힘의 소유자였다. -본문 중에서

반면에 목사는 날로 쇠약해져 갔다. 한 때는 명망 높던 그였지만, 고백하지 못한 죄는 한 영혼을 무참히 갉아 먹었다. 그의 설교는 사람들을 감동시켰지만, 설교와는 다르게 살 수 밖에 없었던 나약한 목사는 결국 ‘죽음’으로 최후를 맞이한다. 작가는 그의 죽음 앞에서 교훈을 남긴다.

진실하라! 진실하라! 진실하라! 그대가 범한 최악의 죄는 아닐지라도 최악의 죄를 추정할 수 있는 특징을 세상에 숨김 없이 드러내어라! -본문 중에서

헤스터가 고생스럽고 사려 깊은 자기희생적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그 주홍 글자는 더 이상 세상의 조롱과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낙인이 아니라 더불어 슬퍼해야 하고 두려움과 존경심을 가지고 봐야 하는 것의 표상이 되었다. -본문 중에서


약점은 드러내야 오히려 강해진다. 자신에게 진실할 때, 비록 당시에는 사람들의 뭇매를 맞을지라도, 손가락질 받을 지라도, 드러낼 수 있는 용기가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맛볼 수 있다. 편견 가득한 삶, 죄로 물들었던 삶을 이겨낸 헤스터 프린의 삶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을 어떻게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지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