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설강의’ 김학경 구룡중학교 교사
“씨발 오늘 숙제 존나게 많아, 병신 지랄하네, 씹 새끼 존나 웃껴”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교복을 입은 평범함 청소년들이 하는 대화다. 대화 내용을 얼추 유추해 보면 대부분 선생님이나 부모, 친구에 관한 이야기다. 아무렇지 않게 욕하는 청소년들의 표정을 보면 악의가 없고 옆 사람도 별로 의식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들의 일상적인 대화이다. 옆에서 듣고 있는 어른들만 민망해 어쩔 줄 모르고, 어쩌다 애들이 이렇게 됐나 걱정할 뿐이다.
욕이 또래 집단의 소통 수단
“요즘 청소년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마치 문장 끝에 조사가 붙듯이 욕설이 일상적이고 만연되었습니다. 자신이 욕하고 있다는 인식도 없이 욕을 하죠. 심지어 아이들에게 왜 욕을 했느냐고 물으면 욕을 안했다고 할 정도로 욕에 대해 무감각합니다. 오히려 욕은 또래 집단의 소통 수단처럼 사용돼요. 그래서 욕을 섞어서 말하지 않으면 함께 어울리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문제는 욕의 상스럽고 낯 뜨거운 정도가 아니라 전반적으로 언어문화에 해악을 끼치고 있다는 점입니다.” 서울 구룡중학교 김학경(사진) 교사가 전하는 학생들의 실상이다. 애들이 왜 그럴까, 어른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김 교사는 아이들의 일상이 욕을 해야만 직성이 풀릴 만큼 각박한 것이 원인 중의 하나라고 말한다. 또 욕의 정확한 뜻을 모르기 때문에 거리낌 없이 쓸 수 있다고 설명한다.
무슨 말인지도 몰라 죄의식도 없어
교사 생활 20여 년째인 김 교사는 도덕 선생님이다. 그는 탁월한 한문 실력을 바탕으로 욕설의 유래를 꼼꼼히 찾아내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바른 언어습관을 가져야 한다는 판에 박힌 ‘훈계형’ 수업이 아니라, 욕에 대해 정확하게 알려줘 문제점을 찾는 독특한 형식의 도덕 수업이다.
"왜 욕 중에는 소새끼, 말새끼는 없고 '개새끼'만 쓸까요?" 김학경 교사는 학생들에게 사실적인 질문을 던지며 성(性)과 연관이 깊은 우리나라 욕설을 차근차근 풀어나갔다. 원시시대 이래 인간은 근친상간을 엄격하게 금했다. 가축 역시 '짝짓기'의 기준이 분명한데 유독 개만 예외이기 때문에 도덕관념이 없는 상스럽다는 의미에서 '개새끼'라는 욕이 등장했다고 김 교사는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학생들이 흔히 사용하는 '시발, 존나게'는 각각 여자의 성기인 '씹'과 남자의 성기 '좆'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도 설명해준다. 우리나라 욕설 가운데는 성기를 비하하거나 근친상간을 의미하는 말이 많다는 이야기에 학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이야기를 선생님한테 직접 들으니 오죽할까.
"학생들이 욕 강의를 무척 재미있어 하지요. 정확한 어원과 속뜻도 모르고 썼던 욕들을 하나씩 놓고 의미를 짚어주니까 내심 놀라는 눈치였어요. 아이들도 욕의 뜻을 알면 욕을 내뱉기 전에 한번쯤은 고민할 겁니다.”
아무래도 학생들이 욕의 어원에 대해 정확하게 알면 욕의 추잡한 실상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욕을 할 상황에 접했을 때 조금이라도 절제하게 된다. 이것이 김 교사가 욕 강의를 하는 이유다.
내 자식은 욕을 안 한다고? 부모들 착각… 적극적인 지도 필요
요즘 아이들은 왜 욕을 입에 달고 살까. 욕에 대해 무감각해진 사회 분위기도 있지만 무엇보다 피폐된 청소년들의 현실이 더 큰 원인이다. 지나친 경쟁, 여가를 즐길 수 없을 만큼 중압적인 사교육 등으로 여유를 잃은 청소년들은 몸과 마음이 각박해졌다. 학교나 가정에서도 입시 교육만 강조할 뿐 인성이나 심성 교육을 거의 하지 않는다.
김 교사는 아무리 욕이 난무하는 세상이라도 내 자식은 안 하겠지 철썩 같이 믿고 남의 일처럼 수수방관하는 어른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내 아이가 부모 앞에서 욕하지 않는다고 나가서도 그러리라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내 자식도 집 밖에서 친구를 만나면 다른 집 자식처럼 욕을 합니다. 요즘 아이들이 아무리 욕을 많이 해도 내 아이만 하지 않으면 괜찮다는 생각은 금물입니다. 욕설이 난무하는 문화에서는 우리 아이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으로 욕하는 청소년을 내 아이처럼 지도하고 이끌어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 희 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