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에 대한 성폭력범죄 처벌 강화
올 한해 사회적으로 가장 큰 반향을 일으켰던 영화는 청각장애학생들에 대한 성폭력 사건을 다룬 ‘도가니’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범죄의 심각성을 다시금 인식하게 하고, 가해범들에 대한 미미했던 처벌이 사람들의 공분을 일으켰습니다. 그 결과 영화 개봉 불과 몇 달 만인 지난 11월에는 사회적으로 ‘도가니법’으로 더 잘 알려진 성폭력범죄 관련 법률 개정이 이루어졌고, 문제가 된 해당 사회복지시설법인의 폐쇄까지 이뤄졌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도가니법의 주요 개정 내용과 의미, 향후 과제들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1. ‘도가니법’이란
지난 달 17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도가니법’이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중 ‘장애인’ 및 ‘13세 미만 아동’에 대한 성폭행 관련 내용의 일부가 개정된 것(이하 ‘개정법’)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첫째, 13세 미만의 여자와 신체적 또는 정신적 장애가 있는 여자에 대한 성폭행(강간, 준강간)에 대한 공소시효가 폐지됐습니다(개정법 제20조 제3항 신설). 둘째, 장애인 여성과 13세 미만 여자를 강간했을 경우에는 유기징역 외에 무기징역까지 처할 수 있도록 처벌을 강화했습니다(개정법 제6조 제1항 및 제7조 제1항). 셋째, 장애인 보호시설 종사자들이 장애인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는 형의 2분의 1까지 처벌을 가중하도록 했습니다(개정법 제6조 제7항).
2. 주요 개정의 의미와 문제점
먼저 장애 여성 및 13세미만 여성에 대한 성폭력 범죄의 공소시효 폐지는, 성폭력 범죄 피해 아동이 성인이 된 후 그 행위의 의미를 비로소 알고 그에 관한 생각을 세상에 표현하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반영한 것입니다. 피해아동이 성인이 되어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더라도 그때는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경우가 대부분인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간 장애인 및 아동에 대한 성폭력 범죄 처벌의 형량이 미미하다는 지적이 줄곧 있어왔고, 이러한 의견이 반영되어 그 형벌이 무기징역까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개정법은 ‘위계 또는 위력’을 이용하여 장애인을 성폭력하는 경우를 처벌하도록 하였습니다(개정법 제6조 제5항 및 제6항). 이는, 현실적으로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 범죄는 강간죄에서의 폭행·협박보다는 그 강도가 낮은 ‘위력’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위력’을 이용한 성폭력의 경우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그 명시적 처벌규정이 없어 그동안 형법 제302조의 심신미약자 간음죄를 적용하여 왔던 현실을 고려한 것입니다. 위 형법상의 ‘심신미약자 간음죄’는 친고죄여서 고소가 적법하게 이뤄지지 않거나 피해자에 대한 합의와 고소 취소 등이 되는 경우에는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개정법상의 ‘위계 또는 위력’을 이용한 장애인에 대한 성폭행은 친고죄가 아니므로, 위와 같은 그간의 문제점은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일각에선 이번 개정법으로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 처벌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오랫동안 문제가 되어왔던 ‘항거불능’의 요건입니다. 즉 개정 전의 법에서는, 가해자가 성폭력 당시 피해자인 신체적 또는 정신적 장애가 있는 사람의 “항거불능”, 즉 저항이 불가능한 상태를 이용하여 성폭력을 가했어야 범죄가 성립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항거불능’의 요건은 피해 장애인의 구체적 상황이나 개별적 장애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오히려 가해자 처벌을 소극적으로 하게 하는 것이라는 등의 비판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개정법에서는 기존의 ‘항거불능’ 요건이 명시적으로 삭제되기는 하였으나, 반면 형법상 그 구성요건 인정이 엄격한 강간죄를 그대로 유지하고,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한 준강간죄를 규정함으로써 실질적으로는 ‘항거불능’을 이용한 처벌규정이 그대로 유지되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기존의 ‘항거불능’ 요건이 삭제된 개정법(개정법 제6조)에 따르더라도, 장애로 인해 성폭행에 대한 의미의 인식이나 저항이 ‘곤란’하여 형법상의 강간죄 및 준강간죄에서 요구되는 정도의 특정한 위계·위력이나 폭행·협박, 항거불능 상태가 없이도 성폭행이 가능한 경우, 과연 이를 처벌할 수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하여는 개정전과 명확히 다르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개정전 법률에서 요구하고 있었던 ‘항거불능’의 요건과 관련하여 기존에 우리 법원이 취하고 있는 입장은 아래와 같습니다.
3. 관련 판례의 태도
'항거불능' 조항의 원래 취지는 여성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해 기존의 강간죄보다 범죄구성요건을 완화하고 가해자를 가중처벌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잠시 언급한 것과 같이, 이 용어에 대한 주관적 해석, 모호한 기준, 장애에 대한 이해 부족 등으로 오히려 가해자 무죄 판결의 근거 조항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대법원 판례에선 성폭력범죄의 피해자가 정신지체장애 1급의 장애가 있기는 하나 그로 인하여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상태였다고 볼 수 없다(대법원 2004. 5. 27. 선고 2004도1449 판결 등)며 ‘항거불능’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하여 왔습니다. 실제 도가니 사건에서도 피해학생이 수화로 거부의사를 밝혔다는 점에서 항거불능이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최근 판례는 ‘항거불능’ 상태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피해자의 정신상 장애의 정도 뿐만 아니라 피해자와 가해자의 신분을 비롯한 관계, 주변의 상황 내지 환경, 가해자의 행위 내용과 방법, 피해자의 인식과 반응의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대법원 2008. 7. 27. 선고 2005도2994 판결)고 보았는데, 이는 법원이 ‘항거불능’의 기준을 넓게 해석함으로써 피해자 구제의 범위를 넓힌 것이라고 하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항거불능 요건에 대해 복합적이고 완화된 해석을 해 왔던 판례의 흐름이 개정법률을 적용한 실제의 사례에서도 유지될 수 있을 지 기다려 보아야 할 것입니다.
4. 향후 과제
‘도가니법’ 뿐만 아니라 ‘제2의 도가니’ 사태를 막기 위하여 추가적인 법적·제도적 보완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는 장애인 대상 성범죄를 별도의 범죄유형 항목으로 신설하고 그 양형기준을 대폭강화한다는 결정을 하였습니다. 또한, ‘도가니법’과 함께 여·야 의원이 참여하는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 등 인권침해 방지대책특별위원회’가 구성되기로 의결되어,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 등 인권침해 문제를 조사하고 관련법 개정을 포함한 종합 대책을 마련하게 됩니다.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이 근절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사회적 관심을 바탕으로 보호장치를 강화해야 할 것입니다.
이 상 숙 (객원기자)
법무법인 한결한울 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여성아동위원회 위원